[배병우 칼럼] 법이 국가의 폭력이 될 때

국민일보

[배병우 칼럼] 법이 국가의 폭력이 될 때

입력 2020-08-05 04:08

다주택자라는 이유로 1년새
종부세로만 수천만원 더 물려
이런 나라가 정상인가
세법, 헌법의 ‘과잉금지 원칙’
위반했을 소지 크다
법안심사 생략해 절차도 흠결
정당성 부족한 법의 양산은 법치와 민주주의 위기 신호


서울시내 조정대상지역에 공시가격 15억원과 13억원인 주택(합산 공시가격 28억원)을 가진 2주택자는 올해 종합부동산세로 2650만원을 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미래통합당이 퇴장한 가운데 다주택자의 종부세율을 최고 6%까지 올리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이 2주택자가 내년에 내야 할 종부세는 6856만원으로 오른다. 올해보다 4206만원 많은 액수다. 또 서울 대구 부산에 각각 아파트 1채씩(합산 공시가격 36억7000만원)을 가진 3주택자가 올해 내야 할 종부세액은 4179만원이다. 이 사람은 내년에 종부세로 1억754만원을 내야 한다. 1년 새 6575만원이나 늘어난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세법 개정안을 지난달 발표하면서 내놓은 문답 자료에 나오는 내용이다.

기재부가 이 사례들을 인용한 것은 1주택자들 세금은 기껏해야 수백만원 오를 뿐 세금 폭탄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수백만원은 세금 폭탄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는 정말 세금 폭탄이다. 잘사는 사람이나 다주택자에겐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해도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 않고선 이런 세제를 만들 수 없다. ‘다주택자=범죄자’나 다름없다. 이런 인식이 여권에 형성된 공감대라는 증거가 얼마 안 가 드러났다. 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지난달 29일 “집을 사고 팔면서 차익을 남기려는 사람들은 범죄자로 다스려야 한다.(다주택자들은) 집을 갖고 싶은 국민들의 행복을 빼앗아가는 도둑”이라고 했다.

집을 두 채, 세 채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1년 사이에 종부세로만 4000여만원, 6000여만원을 더 걷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재산세도 크게 늘 게 틀림없다. 정부는 지난해 12·16 대책에서 현재 3.2%인 종부세 최고세율을 4%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여당 내에서도 징벌적이라는 비판이 나와 보류한 바 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최고 세율을 6%로 올린 것이다. 조세를 빙자한 징벌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값 폭등이 공급 요인을 무시한 채 규제 일변도 정책을 펴온 정부의 정책 실패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국가의 폭력에 가깝다. 2017년 민간 전세 시장을 활성화한다며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확대를 내건 정부를 믿은 임대사업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강제적 물리력이 본질인 국가권력은 원천적으로 폭력적이다. 국가권력의 수단인 법에는 그 폭력적인 속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법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내용과 절차 모두 일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때 기준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때 헌법은 제37조 2항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규정했다. 입법권자가 선택한 기본권 제한 조치가 입법 목적에 적절하더라도 보다 완화된 형태나 방법을 모색해 기본권 제한을 최소한에 그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부동산값을 잡는다며 징벌에 가까운 세금을 규정한 부동산 법안들은 헌법의 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했을 소지가 크다. 절차상으로도 이 법안들은 큰 하자가 있다. 여당은 법안 통과 과정에서 ‘안건을 심사할 때 전문위원의 검토 보고를 듣고 대체토론과 축조심사 및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한다’고 규정한 국회법 제58조를 무시했다. 민주당은 국회법 57조를 거론하며 “소위 구성은 필수가 아니다”고 하지만 말이 안 된다. 이런 법안 심사 절차가 30여 년간 지켜져 규범화된 데다 법에까지 명시된 것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해석하는 게 맞는다. 법안이 야당과의 교섭과 토론, 심의·조정을 거치지 않을 때 그 정당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용과 절차 모두 심각한 논란이나 하자가 있는 부동산 법안의 일방적 통과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위험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들이다. 법치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버팀목이라는 점에서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지난 4월 총선 이후 여당 핵심들의 발언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국민이 거대 의석을 준 것은 자신들이 국정을 마음대로 하게 위임한 것이라는 식의 발언 말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의견이 다른 소수파와의 공존과 타협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라는 기본 인식조차 없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여권의 인식이 이러한 수준이라면 오늘의 혼란과 갈등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