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습식사회, 건식사회

국민일보

[너섬情談] 습식사회, 건식사회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입력 2020-08-05 04:02

세상의 모든 건물은 둘로 나눌 수 있다. 공사 과정에서 물을 쓰는지에 따라 습식과 건식 공법이 있다. 습식은 말 그대로 재료를 물에 개어 쓰는 방식이다. 물을 부은 흙이나 시멘트를 접착제 삼아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어 집을 짓는다. 단순한 기술이어서 숙련된 고급 인력이 필요 없을 정도다. 건식 공법은 마른 재료를 깎아 끼워 맞춘다. 재료의 종류도 다양하고 재료와 재료가 만나는 결합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리 상황을 예측한 정확한 설계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오차까지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재료는 공장에서 생산한다. 안정된 환경에서 기둥과 벽과 창문을 생산하므로 품질은 월등하게 우수하고 단가는 낮출 수 있다. 짓는다기보다 자동차나 선박처럼 조립에 가깝다. 도면에 따라 시공하면 되니 공사 현장에서 개인의 역량보다는 전체의 시스템이 중요하고 다양한 산업 전반의 고른 발전이 중요하다. 전통건축으로 보면 토담으로 지은 초가집은 습식이고,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춘 기와집은 건식이다.

습식 공법의 가장 큰 단점은 사람의 솜씨에 따라 결과가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점이다. 공사를 하는 사람의 실력이나 경험, 심지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 둘째로, 기계나 장비를 활용하기 어려워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야 하니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지속가능성에 치명적 약점이 있다. 재료의 물이 마르면서 모양이 변하기도 하고 틈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며 접착력과 강도가 떨어져 무너지기도 한다. 천년 넘게 서 있는 기와집은 있지만, 흙벽으로 지어진 초가집이 백 년도 버티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의 건축역사학자 케네스 프램튼은 건식 구조의 의미를 확장한 인물이다. 재료의 결합으로 공간이 탄생하는 지점을 텍토닉이라 정의하고 움막에서 진화하여 건축이라는 지적인 활동으로 성립하는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물리적 요소가 함축되어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는 양상이 시학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할 정도다. 습식과 건식은 대등하다기보다는 우열 관계이며 후진과 선진의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건설은 습식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한국인의 뛰어난 솜씨에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솜씨는 공예품 수준의 작은 건물에서나 유용할 뿐 대규모의 현대 건축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장 인부의 구인난을 호소하면서도 시스템에 투자를 아끼는 건설사들은 이런 측면에서 여전히 후진적이다.

공사 과정의 물 대신 사람을 넣어보면 문명과 사회 전반으로 습식과 건식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이는 습식사회라 부를 만하다. 법규와 규정이 구체적이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또는 여지를 지나치게 많이 남겨두어 사람이 중요해진다. 위원회에 결정을 미루지만 위원회가 구성원에 따라 결론이 오락가락하는 조직이라면 습식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사람의 자의적인 판단이 배제되거나 최소화된 사회를 건식이라 부를 만하다. 건식은 시스템과 매뉴얼에 결정을 맡기는 구조다. 의사결정에 일관성이 있으며 예측 가능하다. 우수하며 진보된 사회다. ‘무관용’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정확한 매뉴얼과 지침을 적용하며 코로나를 막아내고 있는 방역은 충분히 건식이다.

선의를 가진 영웅이 나타나 모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고 방향을 제시하기를 기다리던 전근대적 사회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곳곳에 축축한 기운이 남아 있다. 시스템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구축하기 위해 애쓴 지도자가 있었는가 하면 모든 결정의 준거를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삼았던 유사 시스템이 있기도 했다. 아예 흙으로 옹기를 만들 듯 관료의 낡은 경험을 빌려 국정을 빚으려 했던 위정자도 있었다. 지도자의 의지에 따라 건식과 습식을 오간다면 이 또한 습식이다. 매번 다른 잣대와 기준으로 판단하는 습식의 전통이 21세기에도 구석구석 남아 진행 중이다. 장마가 그치면 함께 뽀송뽀송해지려나.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