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국민일보

[청사초롱]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 2020-08-05 04:02

‘결혼생활에서의 다툼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부부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부부 문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존 가트맨 심리학 교수가 42년에 걸친 부부 연구를 정리하며 던진 말이다.

가트맨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69%의 부부 싸움은 반복되는 문제로 다툰다. 즉 부부들은 서로 바꿀 수 없는 똑같은 문제로 평생을 다투는 것이다. 언젠가는 배우자가 바뀔 거라는 기대를 하니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그런 기대가 전혀 없다면 어느 누가 힘들게 싸우겠는가.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현실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곧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같은 선상에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는 속담이 있다.

그럼 왜 부부들은 배우자의 반복되는 거친 요구에도 행동을 바꾸지 않는 것일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바꾸지 않는 것’이 아니고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부 싸움은 옳고 그른 것 혹은 잘한 것과 잘못한 것에 대한 양보 없는 전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부간의 다툼은 대부분 ‘다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우자로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성격적 특질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결혼 전 30여년 동안 살아온 환경이 전지의 양극과 음극처럼 다르다.

‘다름’이 뭐 그리 대수냐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 성격이 잘 맞아서 사는 부부가 어디 있어?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고? 그것 핑계 아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다름’이 갈등과 충돌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주장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다름’이 서로에게 불편함을 넘어 고통을 안겨주고, 두 번째는 ‘다름’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A는 집이 깨끗하게 잘 정리된 것을 좋아한다. 규칙 없이 막 어질러져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피곤하더라도 정리 정돈을 끝내야 마음이 편하다. ‘정리의 기본은 버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A와 결혼한 B에게 ‘정리’는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다. 있을 것이 어딘가에 있으면 될 뿐이며, 거실이든 안방이든 장롱 위든 공간만 보이면 다 쑤셔 넣고 쌓아 둔다. 모든 물건은 필요할 때가 있다고 믿으며 절대 버리지 않는다.

혼자 살 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A와 B지만 부부로 살기 시작하며 ‘다름’의 아픔을 깨닫게 된다. (안타깝게도) A는 B의 물건도 정리해야만 마음이 편해진다. B가 어질러 놓은 물건까지 정리하는 일을 반복하다 (정리에 관심 없는 B를 보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B에게 화를 내며 정리할 것을 강요한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며 B를 거칠게 몰아세우기도 하고, 급기야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B를 비난한다.

하지만 B는 변하지 않는다. B 역시 마음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A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강박증이 있는 정신병 환자처럼 느껴진다. 회사도 아니고 편하게 지내야 할 집에서까지 유난 떠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예민하고 민감해서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비난해 버린다.

여기 어디에 옳고 그름이 있는가. 성격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에서 ‘다름’은 ‘틀림’으로 전이된다. ‘다름’이 서로에게 불편함을 넘어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더욱더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러한 ‘다름’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자신도 못 바꾸는데 어찌 남을 바꿀 수 있겠는가.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