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알뜻 말뜻]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국민일보

[최현주의 알뜻 말뜻]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입력 2020-08-08 04:05

벌써 8~9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감탄할 만한 TV광고 하나 소개한다. 버스 안, 2명의 여학생이 참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곧이어 나오는 내레이션.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습니다.” 여학생들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버스 좌석에 앉아 목이 꺾이도록 졸고 있는 사람, 아니 시루떡! 그다음 카피가 압권이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험처럼 마셔라!”

두 여학생의 표정 연기는 ‘리얼’하고,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 ‘떡실신’해 졸고 있는 사람을 영상으로 형상화해낸 솜씨는 기발하기 짝이 없다. 침 흘리듯 고물을 질질 흘리며 축 늘어져 흔들리는 시루떡이라니! ‘떡실신’을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만들어보자고 의견 통합을 한 크리에이터들의 용기가 놀랍고, 이걸 실제로 만들어낸 감독의 실력이 놀랍다. ‘떡실신’이라는 단어를 한 문장으로 단칼에 정리한 카피는 얼마나 유쾌하고 재기발랄한가? 공감의 지점이란 바로 이런 거다. 연일 계속되는 업무와 회식 피로에 출근길 버스 안에서 잠이 들어 고개를 앞뒤로 심하게 끄덕여본 직장인들이라면, 숙취 해소에 탁월함을 소구하는 이 차 음료 광고에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공감(empathy)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empatheia’에서 왔다. 안을 뜻하는 ‘en’과 고통이나 감정을 뜻하는 ‘pathos’의 합성어다. 풀어 쓰자면, 안으로 깊이 들어가 감정을 느끼는 것이 공감이다. 단순히 같은 생각이나 의견을 갖는 동의나 동감과는 다르다. 그야말로 네 마음이 내 마음이다. 떡실신 공감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자들의 가슴속에 들어가 단숨에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고 두고두고 구매욕을 자극했다.

떡실신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등재돼 있지 않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사용자 참여형 사전인 우리말샘에는 올라있다. 사전은 당대의 언어보다 한발 늦다. 오른쪽에 대한 정의를 보자. 국어사전에 의하면 ‘북쪽을 향했을 때 동쪽과 같은 쪽’이다. 원론적이다. 오다기리 조가 나오는 이시이 유야 감독의 영화 ‘행복한 사전’에 의하면 ‘10이라고 적었을 때 0의 방향’이다. 오, 직관적이다!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표준어보다 더 빈번하게 쓰이는 언어들이 있고, 국어사전에는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도 있다. 우리말 표준어이자 일상어인 ‘사흘’과 ‘나흘’을 정확하게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도 많고, ‘지어내어 말하거나 거짓말하다’는 뜻으로 국어사전 관용어 사례에도 올라있는 ‘소설을 쓰다’라는 말을 두고 항의하는 이들도 있다. 어울려 있는 남녀를 보고 ‘그림 좋다’라고 말하면 화가협회에서 정색할까 궁금했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이 명작카피를 응용해보는 재미. 새는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새가 될 수 있다. 공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다른 동물이 되거나 칼이나 못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