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시 번역은 정황 감안해야

국민일보

[기고] 한시 번역은 정황 감안해야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장·문학박사

입력 2020-08-06 04:04

지난 7월 29일자 국민일보 오피니언 면 ‘청사초롱’에 실린 외부 기고 ‘오류 많은 문화재 보도’(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와 관련해 반박하고자 한다. 기고자는 충남 태안 신진도 폐가에서 발굴된 한시(漢詩)와 관련된 언론 보도의 문제는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보도자료 자체에 한시 해석의 오류가 있었고, 이것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자 자극적이고 과도한 해석을 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를 도와 한시 자문에 응한 연구자로서 그런 의도는 없었음을 밝힌다. 오히려 역사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직역에 매달리면 역사적 실체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울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지난 4월 산책을 하던 지역 주민이 30년 이상 버려졌던 고가(古家)에서 묵필본의 문서들을 발견,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 신고하면서 이 태안 신진도 고가의 역사적 성격이 드러나게 됐다. 상량문에 의하면 건립 시기는 1843년이다. 수습된 기와의 모양, 주변에 창고가 여럿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사가(私家·개인집)라기보다 기관의 건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기관이라면 수군과 관련됐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했다. 관인이 날인된 군적부(軍籍簿)와 한시 기록들은 고가의 성격과 관련 있는 문건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발견된 한시는 이런 역사적 배경과 정황을 참고해 번역할 일이었다.

기고자는 먼저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는 구절의 해석을 문제 삼았다. 그는 ‘신설(新設)’을 ‘새로 짓는다(신축)’는 의미가 아닌 ‘처음으로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옳고, 그래서 ‘처음 열린 마을 잔치를 기념한 시’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황상 1843년 이 집을 새로 짓고, 1년 뒤 부역한 군민들을 위해 잔치를 베푼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신진도는 이런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면 많은 인원이 모일 이유가 없는, 태안에서도 아주 외딴섬이기 때문이다.

기고자는 또 ‘오늘 찰보리가 서사에 도착했구나(今日打麥羊西舍應)’에서 ‘맥양(麥/羊)’은 ‘성(聲)’을 잘못 판독한 것이라고 했다. 이 구절은 ‘오늘은 서쪽 집에서 타작하는 소리로 응답하네’라고 해석하는 게 맞으며 추수절의 바쁜 풍경을 읊은 것이라 했다. 그는 ‘맥양(麥/羊)’을 ‘성(聲)’으로 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연구자는 번역하기 좋게 글자를 바꾸어선 안 된다. 이 구절은 수군 관청과 연관 짓는 것이 문맥상 맞다. ‘군포를 내라는 조칙이 이미 이와 같은데, 홀연 지난밤 보리가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의 시 구절에서 ‘포(布)’ 역시 관인이 날인된 군적부와 관련해 군포와 연관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다른 한시에서 ‘사람이 계수나무 꽃처럼 떨어지니(人間桂花落)’로 해석한 것도 역시 수군에 동원돼 모두 죽어 조용한 동네의 정황을 당나라 시인 왕유의 시를 빌려 읊은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원래 왕유의 시는 ‘사람은 한가한데 계수나무 꽃은 지네(人閒桂花落)’이다. 폐가에서 나온 시는 왕유의 시에 나오는 ‘閒’(한·한가하다)’을 ‘間’(간·사이)으로 바꿨다. 기고자는 왕유의 시구 그대로 ‘閒’으로 읽힌다고 했으나 ‘閒’과 ‘間’은 초서자형(흘려 쓰는 한자체)이 유사하다.

우리가 ‘인간’에 쓰는 한자어 ‘間’으로 추정한 것은 폐가에서 나온 ‘無量壽閣’(무량수각·오래 사는 집)이라는 편액에도 기인한다. 많은 인명이 수몰돼 애도하는 마음으로 폐가의 건물명도 ‘무량수각’이라고 지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직역이 능사는 아니다. 의견이 다른 연구자들은 이런 점을 혜량하기 바란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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