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대가족 생활에서 배운 것

국민일보

[혜윰노트] 대가족 생활에서 배운 것

입력 2020-08-07 04:07

종종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는다. 미술 관련 일을 하니까 미대를 나왔으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내가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을 전공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금융권에서 홍보와 방송 일을 했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얌전하게 생겼는데 주장이 강하다는 사람도 있고, 막내 같은데 첫째 맞느냐고 되묻거나, 서울 사람 같은데 지역 출신이라고 의외라는 사람도 있다. 결혼을 안 했으니 비혼주의냐는 말도 듣는다.

오해는 자칫 편견의 씨앗이 될 수 있기에, 조심스럽고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해졌다.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비치는 것일까, 그런 단정적인 오해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럴 때면 어릴 때 대가족 속에서 살며 일찍 사람들의 군상을 만났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통계청의 ‘2018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일반 가구에서 가장 많은 가구 유형은 1인 가구였다. 1인 가구는 전체의 29.3%, 2인 가구 27.3%, 3인 가구 21.0%, 4인 가구 17.0%, 5인 이상은 5.4%였다. 사람이 많은 서울에 살지라도 다양한 사람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알게 될 기회는 많지 않은 것이다. 가구원 수로만 보면 거뜬히 상위 1%의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여러 식구가 한집에 살았던 경험에 대해 조금이나마 소개하고 싶다.

지금은 고향에 부모님 두분 뿐이지만,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집에는 열 명 남짓의 식구들이 있었다. 이미 3대가 함께였는데 집이 인문계 고등학교와 가까워서 가끔 하숙생이 추가되기도 했다. 아빠는 칠남매의 맏이로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밖에서 경제활동을 했고, 엄마는 과로로 쓰러질 정도로 많은 집안일을 도맡았다. 나는 바쁜 부모님의 관심과 시간을 온전히 배당받기 어려웠고, 가족이 오며 가며 봐주는 식의 돌봄을 받았다. 드라마 ‘꼭지’에서 꼭지가 주인공일 수 없었던 것과 같다고 할까. 나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어린 시절과 가족들을 기억한다. 하나의 방은 보통 2~3명이 공유했는데 안방 문을 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구성된 노인의 생활이 있었고, 교련복과 ‘선데이 서울’이 생각나는 삼촌들 방에서는 남학생들의 파란만장한 에너지가 흘렀다. 만화와 소설에 심취한 소녀였던 고모, 그리고 엄마 아빠가 썼던 방 등, 그룹마다 분위기가 있었다.

가족들은 대체로 착하고 평범했다. 준비물이나 도시락을 놓고 왔다고 전화를 하면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가져다 주셨고, 주말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전국노래자랑을 봤다. 아침에는 7살 위 막내 삼촌과 같이 등교에 나섰고, 저녁이면 운동부였던 둘째 삼촌이 마당에서 이단평행봉을 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했다. 주말에는 식구 중 누군가의 외출에 딸려 가기도 했다. 나는 첫째였지만 대가족 속에서 막내였고, 동생이 생겼지만 내가 돌볼 필요는 없었다.

이른 나이에 다양한 연령의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됐다. 가족이라지만 서로의 상식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모든 구성원 간의 관계가 늘 동등하거나 공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질투와 서운함이 생기고, 싸우고 원망하는 일도 있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을 몸소 이해하는 어린이로 산 셈이다.

그 경험은 나에게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가 아니라 권위의식 없는 따뜻함 때문에 할아버지를 좋아했고, 집안일을 떠맡은 엄마를 보며 여자와 며느리에게 요구되는 삶에 대해 이의를 가지게 되었다. 한동안 백수라고 눈칫밥 먹던 삼촌이 측은해 보였고, 어떤 사람이 차려입었다고 집에서도 멋진 사람은 아닐 수 있으며, 다툴 때 하는 말이 모두 진심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덕분에 사람들의 오해를 이해해 볼 수 있고, 나의 오해를 줄이려고 노력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섞이고 관찰하고, 주장도 하고 논쟁도 하면서 결국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에 이르기를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라는 인정이 먼저 필요하긴 하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