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주시는 대로 낳기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주시는 대로 낳기

유장춘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입력 2020-08-07 04:04

90년대 초 우리 부부가 셋째 아이를 낳자 사람들은 미개해 보인다며 놀렸다. 거의 십 년이 지나 40이 훌쩍 넘어 넷째 아이를 늦둥이로 낳자 사람들은 좋아 보인다고 부러워하며 축하해 주었다. 요즈음 주변의 사람들은 아예 애국자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요즈음의 청년세대는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거의 공포 수준으로 거부하고 있다. 결혼 연령은 늦어지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한데도 도무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압도적으로 세계 최저라는 사실, 매년 그 사상 최저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통계들은 이미 매스컴을 통해 충분히 알려졌다. 저출산 분야 예산은 계속 늘고, 임신과 출산 가정을 지원하는 정책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많아지는데도 출산율은 정반대로 추락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임신과 출산, 양육의 사회적 환경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동 양육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들, 출산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복지 정책들은 많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보육시설 부족과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부동산 가격 급등, 가중되는 사교육비의 압박,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 등 구조적인 문제들로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런 것들이 모두 개선되고 나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인가. 선뜻 그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면 이미 그래프의 곡선은 개선의 기미라도 보여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그런 복지적이거나 구조적인 문제들, 즉 인간의 외부적인 주제들보다 더 깊은 내면적인 문제들, 즉 실존적인 자리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 결혼 후 아이를 낳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모두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나는 아니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싫다고 느끼는 것을 보면 아기를 낳지 않아야 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 없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고 계속 지키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신념을 가진 세대가 새로운 시대의 인간상이다. 그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이 얼마나 당당한 자유선언인가! 의무에 묶여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비참한 것이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그 자유는 하나님에 대한 선택까지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절대적 자유이고 존재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자유다.

안타까운 것은 그 위대한 자유의 권리를 갖고 생명과 사랑의 포기를 선택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저들에게 자유로움보다 더 강한 부자유함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기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은 존재와 의미를 향한 실존적인 선택인가, 생명과 사랑을 향한 모험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선택인가를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Double Income, No Kids’를 줄인 딩크(DINK)족이 늘고 있는데 그들은 안정된 현재의 상태를 깨뜨릴 위험한 선택은 절대로 할 수 없다.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현대사회를 ‘무통문명’이라 이름 짓고 하나의 병리 현상이자 악몽이라고 단정한다. 저출산 문제는 인간의 외부적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적인 실존적 문제요 그래서 영적인 문제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문제다.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6명까지는 낳아보자고 약속했었다.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사회를 압도하던 80년대 후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시는 대로 낳아보자”고 말하지 못한 미성숙한 약속이었지만 우리는 요즘 그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 것을 못내 후회하고 있다.

유장춘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