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부러진 우산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부러진 우산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0-08-07 04:06

집 앞을 잠시 나섰다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다. 폭우에 바람마저 워낙 강해 우산이 소용없던 걸까 했는데, 나중에 보니 우산 천에 구멍이 나 있었다. 무늬 때문에 흠이 잘 안 보였던 것이다. 전날을 교훈 삼아 다음 날 출근길에는 다른 우산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사히 직장에 도착한 뒤 갑자기 우산이 접히지 않아 끙끙거리다 또 비를 홀딱 뒤집어쓰고 말았다. 뚝뚝 떨어지는 물과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털어내며 보니 우산살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어째 그 많은 우산 중 하필 구멍 나고 고장 난 것만 골라 집었을까! 어설프게 우산을 말아 쥐며 투덜대어도 답이 있을 리 없다. 나름 아끼던 우산이라 고쳐 쓸 방법을 궁리하였으나 딱히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꽤 있는지 셀프 우산 수선법이나 우산 고치는 곳을 묻는 질문들이 보였지만 딱히 나에게 맞는 정보는 없었다. 일부 구두수선소에서 우산을 고쳐주기도 한다는 글이 있었지만 코로나19 때문인지 근처 수선소 대다수가 문을 닫았다. 어렸을 때는 동네 어귀나 시장 근처에 칼을 갈거나 우산을 고치는 사람이 종종 왔다. 그러면 어른들 심부름으로 고장 나서 쌓아둔 우산을 우르르 가져가 고쳐 오거나 고칠 수도 없는 상태면 고물로 넘기고 엿이나 튀밥으로 바꿔 먹던 추억이 있는데, 어느새 그런 풍경이 사라진 것이다.

최근의 기상이변과 감염성 질환의 대유행이 결국 인간이 지구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결과라는 기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쉽게 물건을 버리고 새로 사기보다 고쳐 쓰는 습관을 들이려고 나름 노력 중인데, 그동안 워낙 편리 위주로 살아온 탓에 우산 하나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이왕 새로 살 것, 기분이라도 전환할 겸 그동안 써본 적 없던 쨍하고 밝은색 우산을 사보자는 얄팍한 결정을 내렸지만 익숙하게 썼던 우산을 버리는 손이 왜인지 영 부끄럽다.

배승민 의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