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무주택자의 ‘계급 배반’

국민일보

[가리사니] 무주택자의 ‘계급 배반’

전슬기 경제부 기자

입력 2020-08-10 04:06

‘계급 배반’이라는 말이 있다. 나를 대변하는 후보를 찍지 않고 다른 계층의 대변자에게 표를 주는 행위다. 왜 가난한 사람이 보수당을 응원할까. 의문을 가리키는 단어다. 최근 쉴 새 없이 부동산 기사를 처리하다 이 단어를 떠올렸다. 나는 무주택자다. 하지만 내가 쓰는 기사에는 다주택자가 많이 등장한다. 지난 7·10 부동산 대책 발표 날, 나는 앞으로 오를 세금 규모를 계산했다. 이날 대책으로 다주택자 최고세율이 종합부동산세는 6.0%, 양도소득세는 72%, 취득세는 12%까지 치솟는다. 종부세만 계산해도 서울 아파트 2채 합산 시(시세 20억원) 세금이 568만원에서 1487만원으로 약 3배 증가한다. 강남 아파트 2채 보유 시 종부세만 1억원에 달한다.

곧바로 ‘세금 폭탄’이라는 성난 여론이 사회를 뒤덮었다. 그때 동료 기자가 말했다. “그런데 어쨌든 나도 종부세 내고 싶다.” 종부세 대상은 1인당 주택 공시가격 합계가 6억원(1주택자 9억원) 이상인 경우다. 시세로 보면 약 13억~17억원 이상 주택 보유 시 부과된다. 지난해 기준 전 국민의 1%다. 그렇다면 1% 국민만 화를 내면 된다. 하지만 왜 우리 모두가 화를 내고 있을까.

이론적으로 다주택자 규제에 대해 집 있는 사람은 반대, 집 없는 사람은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집 없는 사람들조차 환호를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저소득층이 규제 강화와 세금 인상에 적대적이다. 계급 배반이 정책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이상 심리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선거 때 나타나는 계급 배반은 취약계층의 정보 부족과 저조한 투표율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자산 정책에도 각 계층에 도달하는 정보가 왜곡될 수 있다. 언론인으로서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내 계급이 아닌 곳을 바라보는 이상 심리가 촉발된 배경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오늘은 아니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그 계급이 될 수 있다는 심리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 시장이 과열되면서 들려오는 각종 ‘대박 소식’은 나와 나의 계급을 계속 분리하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연 2000만원 이상 주식 이익에 대해 과세 방침을 밝히자 거센 조세 저항이 발생한 것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연 2000만원 수익을 내려면 투자 자금을 억 단위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유 자금이 많은 투자자가 주요 대상이다. 하지만 주식 개미들은 분노하며 말했다. “이것은 나와 관련된 이야기다. 대박이 터지면 언제든 나도 세금 대상자가 될 수 있다.”

경기 불황으로 돈 벌 곳이 자산 시장밖에 없다는 절박감도 이상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결국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도박판 시장의 유혹이 계급 배반 현상을 불러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대박’은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3억~4억원의 집이 10억원 이상까지 올라 종부세 대상이 됐다는 지인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30, 40대 사이에서는 더이상 학력과 연봉 등이 자격지심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부동산과 주식을 통한 재테크 성공 여부가 새로운 격차를 만들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취재원은 부동산을 ‘공적 마스크’에 비유했다. 올해 초 우리는 마스크를 못 살까 봐 사재기를 하고, 약국 앞에서 긴 줄을 섰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도 비슷하다. 언제든 적당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사회적 심리가 만들어져야 이 사태가 끝난다는 뜻이다.

그런 날은 올까. 정부는 시장을 이기기 위해 폭격 수준으로 규제를 퍼붓고 있다. 계급 배반은 정부 정책이 절대 나를 도와주지 못하고, 나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불신의 결과일 가능성도 크다. 아직 누구도 과속으로 달리는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