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종이와 인쇄문화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종이와 인쇄문화

오병훈 수필가

입력 2020-08-10 04:07

책방이 줄어들고 독서인구가 감소한다고 걱정들을 한다. 전자책 시대가 되면서 미래에는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종이 소비량은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 책을 많이 읽는 민족이 흥한다는 뜻일 게다.

서양사에서는 종이의 기원을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두고 있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종이라 할 수 없다. 나일강에서 자라는 방동사니의 껍질을 종횡으로 펴서 무거운 돌 같은 것으로 납작하게 눌러 말린 파피루스. 거기에 상형문자를 기록한 파피루스 문서가 남아 있다. 종이는 반드시 펄프 상태를 거쳐야 한다. 식물의 섬유질을 물에 풀어 걸쭉하게 한 것을 고운 망으로 떠내고 이것을 말리면 종이가 된다. 중국에서는 후한 때 환관이었던 채륜(蔡倫)이 마포와 어망 등을 물에 풀어 종이를 떠냈다고 전한다. 최초의 종이 원료는 닥나무가 아니라 옷감을 짜는 마나 모시였을 가능성이 높다. 당 고종 때 고승 수덕(修德)이 닥나무를 재배해 양질의 종이를 만들고 화엄경을 베껴 쓴 이후 닥종이 제조 기술이 사찰에서 널리 이어졌으리라.

우리 역사에 처음 종이가 등장한 것은 채륜의 종이보다 100여년 앞선다. 낙랑고분에서 발굴됐다. 닥종이 섬유를 관의 내부에 발라 청결하면서도 견고하게 했다. 우리는 인류문화사에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인쇄술을 가진 민족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석가탑에서 나왔다. 또 세계 최초의 금속인쇄물인 직지심경을 찍어낸 민족이 아닌가. 모두 좋은 한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컴퓨터가 생활의 필수품이 된 오늘날 전자시대에 가장 적합한 글자가 한글이라고 한다. 어문학자들은 인류가 만든 문자 가운데 가장 쉽게 배울 수 있고 과학적이며 표현이 자유롭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한글이 있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올 들어 처음으로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 벌써 계절이 바뀌는가.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날이 많았으면.

오병훈 수필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