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역사는 역사에 맡겨라

국민일보

[국민논단] 역사는 역사에 맡겨라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입력 2020-08-10 04:07

8월이 되니 망국의 아픔이 다시 고개를 든다. 정파에 따라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해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남 일 같지가 않다. 미국에서는 노예를 거느렸다는 이유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욕을 먹고 있다. 워싱턴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건국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미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며 그의 동상을 잇달아 훼손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출했던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도 비슷한 신세가 됐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일조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생물과 같아서 언제든 그 평가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가 ‘시대의 자식’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지금 관점에서 과거를 일률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하나, 과거를 재평가하더라도 너무 강퍅하지 않으면 좋겠다. 부끄러운 과거는 지워야 하지만 아름다운 역사는 또 그것대로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름 애써 이룩한 성취마저 깡그리 정죄하고 나면 우리 삶이 너무 외롭지 않을까.

더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이 함부로 역사를 해석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민의 생각이 심각하게 엇갈릴 때 특히 그렇다. 정치인이 권력을 업고 자신의 주관적 역사관을 국민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불과 몇 년 전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극렬하게 저지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특정 정치세력이 역사해석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제주 4·3사건 추념식에서 “제주가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다는 이유로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다”고 했다. 4·3사건으로 죄 없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비극은 한편으로는 군경의 가혹한 진압, 다른 한편으로는 남로당 등 좌익 세력의 무장폭동에서 비롯됐다.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통념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4·3사건의 본질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가 공권력의 잘못’만 부각시키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추종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굳이 눈감고 있다. 심지어 그들을 ‘평화와 통일을 열망’한 세력으로 미화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할 말인가.

이 와중에 집권당 주도로 국회의원 132명이 ‘제주 4·3사건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김대중 정권 때 공포되고 헌법재판소가 재확인한 현행 특별법의 골격이 크게 뒤틀리게 될 것이다. 문재인 사람들의 속마음이 진짜 궁금하다. 일부에서 의구심을 갖듯이 정말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박원순 사건’에서 보듯이 역사현상에 대한 이들의 시각은 공정하지도 않고 당당하지도 않다. 그렇기에 더욱 역사문제는 역사에 맡겨야 한다. 정치권력이 섣부르게 개입해서 분란을 일으킬 일이 아니다.

정치학자 하상복에 따르면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 조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모실 판테온(Pantheon), 즉 ‘국립묘지’를 조성했다. 이때 아무리 훌륭한 애국자라 하더라도 최소한 10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그의 정치적 공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게 했다.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작가 알베르 카뮈의 판테온 안장 계획을 발표했지만 여론이 안 좋았다. 사르코지 같은 반(反)진보적 인물이 카뮈의 안장을 결정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접었다. 이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다.

과거 한국의 운동권 학생들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었다. 카는 사회주의자였지만 균형을 잃지 않았다. 역사가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편향성을 완전히 극복하기 어렵다. 카는 이런 인간적 한계를 깨닫고 겸손하게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만이 좋은 역사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증되지 않은 역사관을 오만하게 밀어붙이는 왕년의 운동권 인사들이 그 책을 다시 정독하기를 바란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