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두 기둥은 양육·전도… 평신도 중심에 세워 ‘새바람’

국민일보

교회 두 기둥은 양육·전도… 평신도 중심에 세워 ‘새바람’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30>

입력 2020-08-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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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지난해 8월 경기도 광주 새에덴구국기도원에서 평신도사역개발원 소속 평신도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새에덴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가는 두 가지 기둥이 있다. 먼저 새에덴 평신도사역개발원이다. 나는 수많은 군중 앞에선 익숙한데 소규모 교육이나 양육에는 약한 면이 있다. 죽전 시대를 앞두고 수많은 사람이 밀려올 텐데 그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물도 넓히고 여러 가지 시스템도 잘 갖춰야 한다. 그중의 하나가 처음 온 새신자들을 잘 양육하고 정착시키는 새신자 양육 시스템이었다. 많은 교회를 탐방하고 세미나를 다녀 봐도 마음에 확 와닿지 않았다.

‘교역자로는 한계가 있다. 평신도가 일대일로 양육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확신이 왔다. 평신도 집사 중에 한 사람을 세워 새가족양육팀을 만들었다. 그러자 교회 내부에서 평신도를 사역 중심에 세우는 것에 대한 저항과 텃세 현상이 나타났다. ‘교역자들이 해도 되는 것을 왜 평신도에게 맡기느냐’는 것이었다.

폭발적인 성장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기득권 다툼과 사역의 밥그릇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을 포기할 것인가.’ 잠시 고민도 있었지만 이런 확신이 있었다. ‘수만 명 대형교회로 가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 이 시스템을 방해하는 것은 사탄의 간교한 전략이다. 교회가 견고하게 서려면 반드시 이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이후 새가족양육팀을 오히려 평신도사역개발원으로 승격시키고 평신도로 8년을 섬겼던 이를 전도사로 세워서 더 힘을 실어주었다. 부교역자는 교구를 잘 관리하게 하고 8주 새신자 정착 과정은 평신도사역개발원에서 하게 했다. 그리고 8주 이후에는 교구가 관리하도록 하는 양육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새가족이 처음 교회에 등록하면 새가족 담당 목사, 교구 전도사, 해당 양육교사, 순장이 심방한다. 5~8주, 길게는 2개월 이상의 1대 1 양육을 권하면서 해당 양육교사를 소개하면 성도는 부담스럽지 않게 1주일에 한 번 있는 1대 1 양육을 받아들였다. 주로 성도의 가정집에서 진행하고 부득이한 경우 교회 새가족 양육실에서 했다.

1대 1로 이뤄지다 보니 평소 갖고있던 신앙에 대한 궁금증을 과외받듯이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양육을 통해 어떻게 해야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 또 헌금 생활과 예배 생활 등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면서 교회에 처음 오는 성도들에게 친절한 신앙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

자연스레 예배에 나오는 정착률이 아주 높아졌다. 예배를 들쭉날쭉 드리거나 인터넷으로 대신하던 성도들은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여기는 성도로 바뀌었다.

새신자는 교회에 처음 왔을 때, 교회 외부 환경이나 담임목사의 설교 스타일, 매너 등을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양육교사는 새신자를 양육할 때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새신자 양육의 목표는 정착에 있다. 출석 교회에 대한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게 하고 공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역동적인 생명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일반 새신자 정착률이 55~60%라면, 1대 1 양육을 받은 새신자의 정착률은 92%에 달했다.

그만큼 1대 1 양육이 갖는 교회 정착의 효과는 놀라웠다. 새에덴 평신도 양육 시스템은 다른 교회에서 탐방을 올 정도로 기반이 탄탄해졌다. 양육 받은 새가족들의 정착률이 높아지면서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나면서 전도가 약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로 노인 전도만 하고 점점 전도의 활력이 떨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새에덴전도단 소속 대원들 기념사진.

새에덴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전도로 부흥한 교회다. 전도의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새에덴전도단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교회가 커지다 보니 교구 전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전도 열정이 식는 것을 막기 위해 특화된 전도단을 만들었던 것이다. 특별히 교역자가 아닌 평신도를 단장으로 세워서 이끌어 나가게 했다. 그렇게 전도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현재는 경험의 축적과 원활한 사역적 리더십을 위해서 전도단의 책임자를 전도사로 임명했다.

새에덴전도단은 각 교구의 전도 총무들이 연합한 초교구 전도단이다. 뜨거운 전도의 사명감을 일으키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수요일마다 전도 총무와 전도인에게 전도교육을 하고 사명감을 고취한다. 전도가 잘 안 되는 지역에는 전도 지원도 나간다.

새에덴전도단은 교구의 총괄 총무와 자주 만남을 갖고 무엇이 필요한지 방향성을 함께 설정한다. 전도를 활성화하면서 전도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 젊은 교회를 만들고 있다. 새에덴전도단이 결성되면서 교회에 다시 새로운 전도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숫자만 느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전도가 이뤄지고 있다. 전도 후 양육으로 이어지는 확률이 높아지고 생명순이 부흥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에덴전도단이 교회의 앞문을 여는 사역이라면 새에덴 평신도사역개발원은 뒷문을 막는 사역을 감당하며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극심할 때는 온라인으로 전도해서 온라인으로 등록을 받았다. 지금도 한 주에 많은 새신자가 등록한다. 이처럼 전도와 양육 사역을 축적하면서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졌고 폭발적인 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

▒ 왜 ‘생명나무목회’인가
바벨론 음녀는 어떻게 금잔을 권하는가

오늘날 사탄은 아주 요염하고 매력적인 음녀의 모습으로 다가와 금잔의 포도주를 권하며 교회와 성도를 비틀거리게 한다. 그렇다면 바벨론 음녀는 오늘날 어떻게 선악과의 금잔을 권하는가.

첫째, 종교다원주의 사상으로 유혹한다. 우리는 지금 절대주의를 배격하는 상대주의 속에서 살고 있다. 현대인들은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신봉한다. 이런 사조 때문에 오히려 요즘 젊은이는 종교가 하나되고 화합하기를 원한다. 물론 전쟁이나 기근을 막고 민족의 평화를 위해 종교 지도자가 만나서 힘을 합하고 하나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한 분밖에 없다고 말씀한다.(신 6:4, 사 44:6)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요 14:6, 행 4:12)

둘째, 선악의 지식이 생명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유혹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 판단까지도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지어 주셨다. 선악 판단의 주인이 하나님이요, 그 고유 권한을 하나님만이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바벨론 음녀는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인에게 생명보다 선악의 지식을 선택하도록 유혹한다.

그러다 보니 은혜를 추구하는 영성보다는 지성을 중시하는 사람이 돼 간다. 물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말씀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 지성은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생명의 지식이 우선돼야 한다. 선악의 지식이 생명보다 우위에 있으면 항상 선악의 노예가 되고 종노릇을 한다.

셋째, 저마다 욕망의 바벨탑을 쌓도록 유혹한다. 바벨론 초대 왕인 니므롯이 시날 평지에 하늘 높이 바벨탑을 쌓은 것도 바벨론 음녀가 부추기고 자극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바벨론 음녀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제단이 아니라 교만의 바벨탑부터 쌓게 한다.

또한, 교회 안에 성과 쾌락이나 인본주의를 유입시킨다. 그래서 점점 교회가 세속화되도록 만든다. 세속화로 인해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쾌락과 물질 욕망의 바벨탑을 쌓게 만든다. 그 바벨탑 속에 복음이 갇히니 교회가 무슨 영향력을 발휘하고 세상에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넷째, 도덕과 윤리가 복음보다 우위에 있다고 유혹한다. 언제부턴가 교회 안에도 복음보다 도덕 윤리가 더 위에 있다는 사상이 은연중에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성도들은 복음의 감격과 복음 전파의 사명보다 교회 안의 도덕성 윤리성 투명성을 더 강조한다. 물론 교회가 도덕과 윤리성이 조금씩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복음보다 중요하지 않다. 절대로 복음 위에 설 수 없다. 자기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의가 강하고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게 된다. 윤리 도덕은 그 자체로 존재해야지 남을 정죄하거나 공동체를 깨뜨리기 위해 선악의 도구로 사용해선 안 된다.

다섯째, 법과 정의가 덕과 사랑보다 더 위에 있다고 유혹한다. 물론 법과 정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덕과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원칙을 앞세우고 법과 정의를 외친다 하더라도 남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교회 안에서 법과 정의 못지않게 덕과 사랑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벧후 1:5~7, 벧전 4:8)

지금 얼마나 많은 한국교회와 교단, 교계가 법정 공방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저마다 정의를 위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믿음의 덕과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 바벨론 음녀의 금잔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바벨론도 망하고 바벨론의 음녀도 반드시 심판을 받고 말 것이다.(계 18:2, 19:2)

그러므로 우리는 바벨론 금잔의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생명나무 목회를 통해 선악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럴 때 생명이 가득한 행복한 목회를 이뤄갈 수 있다.

소강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