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왜 도서정가제인가

국민일보

[청사초롱] 왜 도서정가제인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입력 2020-08-12 04:04

신문과 책은 정가제 적용 대상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만 유독 일몰법이다. 그래서 3년마다 새로 원칙을 정해야 한다. 올해도 민관협의체에서 16번이나 회의를 해서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발표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합의안을 뒤집고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출판계에 구두로 통보했다. 소비자 권익을 이유로 댔지만 뒤늦게 청와대의 지시로 판을 뒤집으려 한다는 설도 있다.

출판계는 즉각 반발했다. 출판사, 서점, 작가 등을 대표하는 29개 단체가 지난 7일 오후 긴급히 모여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출판계의 위기감은 크다. 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결국 출판사는 10여개만 남고, 오프라인 대형서점은 교보문고만 남고, 온라인서점은 3개만 남고, 중소형 서점과 도매상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그날 공동대책위가 내건 표어는 “도정제를 포기하는 것은 문화국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였다.

한 출판인은 도서정가제가 출판문화에 기여한 이유로 출간종수의 급증, 독립서점의 증가, 젊은이들의 출판사 창업 확대 등을 들었다. 2002년에 출간종수는 3만5000종에 불과했다. 그때 일본은 7만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8만종으로 일본과 어깨를 겨룰 정도다. 서점의 폐업이 급속하게 이뤄지다가 2014년 이후에는 폐업이 거의 멈췄을 뿐만 아니라 독립서점이 550여개나 새로 생겼다. 젊은이들이 출판사를 창업해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도 줄을 잇고 있다.

문체부가 같은 날 출판계, 전자책 유통사, 웹툰·웹소설 업계 등이 참여하는 ‘도서정가제 관련 전자출판물 업계 간담회’를 따로 열기로 했지만 출판계는 불참했다. 출판계에서는 웹툰과 웹소설에서 강자가 된 네이버와 카카오의 로비나 압력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졌다는 이유를 댄다. 종이책의 매출 감소로 고전하던 일본 출판사들은 인기 만화를 전자책으로 펴내 성장의 동력을 확보했다. 이미 강자인 네이버나 카카오가 빠른 성장을 하자면 가격으로 흔들 필요가 있으니 로비를 해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책시장마저 음원시장처럼 초토화돼 생산자가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사태를 우려한다.

최근에 신기하게 늘어난 동네책방(독립서점)을 취재해 책을 펴낸 출판평론가 한미화는 시작할 때만 해도 책 제목을 ‘동네책방 전성기 탐구’로 하려 했으나 취재를 해보니 책방 운영이 고난의 길이어서 ‘동네책방 생존탐구’(혜화1117)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책에서 “수많은 책방이야말로 책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보루다. 책방에서 다양성을 빼앗는다면 가장 먼저 독자들이 책으로부터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서정가제를 비롯한 출판 서점업계 관련 사안은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 있어 모두를 만족시킬 정답은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 그러나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논쟁을 거듭하며 도서정가제의 향방을 고민해온 것은 책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 앞으로의 사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고 지적한 그는 “도서정가제 제정과 개정을 둘러싼 지난 역사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바는 과연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다.

판매대를 팔아서 베스트셀러 위주로 진열하는 대형서점이나 광고비를 지불하고 초기화면에 책을 노출해야만 하는 온라인서점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수많은 양서들이 지방의 중소형 서점에서는 무수히 발견되고 있다는 증언이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개점과 폐점이 동시에 진행되며 551곳으로 늘어난 동네책방이라는 커뮤니티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완전 도서정가제다. 아마도 그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