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25) 올림픽 성화 소화 퍼포먼스… 가슴 벅찬 추억으로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석창우 (25) 올림픽 성화 소화 퍼포먼스… 가슴 벅찬 추억으로

주께선 내 두 팔에 의수 끼워주시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놀라운 은혜 세상에 널리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셔

입력 2020-08-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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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 폐막식 퍼포먼스 영상 속 석창우 화백과 그의 작품 ‘하나된 열정’.

2014년 3월 16일 오후 8시(현지시각). 2014 러시아 소치 동계장애인올림픽 폐막식이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4만5000명 관중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내 몸의 일부와 다름없는 붓을 들고 섰다. 내게 주어진 작품 퍼포먼스 시간은 2분 40초. 화선지 크기가 가로 8m 56cm, 세로 2m 10cm에 달했기에 평소 시연할 때 사용했던 붓보다 더 큰 붓으로 골랐다. 붓이 너무 무거워 관련 업체 몇 곳으로부터 내 의수에 사용하기 쉽게 제작된 붓을 지원받았다. 붓대를 크게 하고 구멍을 뚫어 붓을 갈고리에 끼워 고정했다.

경기장 중앙에 마련된 나만을 위한 무대에 올라가 화선지 앞에 서자 음악이 시작됐다. 온 정신을 집중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물이 든 통에서 붓을 꺼냈다. 주저함 없이 바로 알파인 스키, 휠체어 컬링 등 동계 장애인 올림픽 5종목을 그려나갔다. 주변의 음악과 소음은 멎고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2018 평창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의 주제를 상징하는 ‘어 저니 투게더’(A Journey Together, 동행)를 적고 발바닥으로 낙관을 찍었다.

작품 시연에 걸린 시간은 2분 37초. 기가 막히게도 3초 정도 여유를 남기고 작품을 마무리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안무를 하던 강원도립무용단이 두 줄로 갈라서 길을 냈다. 그 사이를 걸어가니 그제야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들렸다. 비로소 내 실력을 진정으로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힘으로만 하려고 했을 땐 도무지 엄두가 안 났지만, 주님께 맡기고 그저 날 주님의 도구로 내어드리니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고 계심을 제대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난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과 관련된 행사엔 종종 참석하며 감동을 이어갔다. 역동적인 선수들의 모습을 수묵 크로키 기법으로 표현하며 장애인 선수들의 의지를 화폭에 담아냈다. 2018년 3월 18일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 폐막식 날, 이번엔 경기장 안이 아닌 미리 찍어둔 시연 영상을 통해 폐막식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성화 소화를 앞두고 선수 모습을 그리는 내 모습이 경기장 전광판을 통해 상영됐다. 당시 올림픽의 공식 표어였던 ‘하나 된 열정’을 적고 발 낙관을 찍었다. 화선지를 의수로 잡고 하늘을 향해 던졌다. 그림은 이미지화돼 스키 슬로프에 펼쳐졌다. 슬로프를 타고 내려가 성화 밑 무용가 양길순 선생이 든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성화 소화 퍼포먼스를 마지막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올림픽에서의 가슴 벅찬 추억은 마무리됐다.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을 때면 그들과 일치된 느낌을 종종 받는다. 잘 움직이지 못하는 답답함이 치유되는 듯하다. 주님께선 가져가신 내 두 팔에 의수를 끼워주시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놀라운 은혜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