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코로나 공황’과 포퓰리즘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코로나 공황’과 포퓰리즘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입력 2020-08-13 04:06

코로나19의 경제 파장이 길어지고 있다. 실물 흐름이 나아지고 있지만 본격 회복보다 기저효과에 따른 반등에 가깝다. 이번 경제 위기는 이전과 색다르다. 미국 카토(Cato)연구소 아널드 클링은 그 차이를 이렇게 집약한다. ‘코로나 공황’에선 소득이 유지돼도 소비를 꺼린다. 제조업보다 서비스업 타격이 더 크다. 종전엔 금융회사부터 어려워졌지만 이번엔 소상공인부터 몸살을 앓는다.

위기의 파급효과도 결이 다르다. 하버드대학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의 진단이다. 첫째,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대부분 나라에서 무역·관광과 해외 근로자의 본국 송금이 줄어든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하락해 신흥국은 어려움이 가중된다. 둘째, 장기 실업자와 노동시장 이탈자가 늘고 그들의 직업역량이 낮아져 허술하게 배운 재학생들과 함께 평생 ‘뒤처진 세대’가 된다. 셋째, 원격근무 등이 마땅찮은 영세자영업자와 블루칼라의 피해가 크고 공급망 교란으로 식량 가격까지 급등해 분배가 악화한다. 이에 대응하느라 전대미문의 돈을 쏟아부은 정부는 물론 가계와 기업의 빚도 빠르게 불어나 또 다른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살기 힘들어진 서민의 분노에 올라탄 포퓰리즘의 입지가 넓어진다. 그러면 엉터리 처방이 쏟아져 경제는 더 나빠진다. 근현대사를 봐도 경제 위기 때엔 포퓰리즘이 득세했다. 희생양을 찾아 편협한 집단주의가 발호했고, 각자도생에 바빠 공민 의식은 엷어졌다. 개별 경제주체의 자율·노력과 책임은 뒷전이고 다들 정부만 쳐다봤다. 1873년 세계 금융위기가 불거지자 미국은 중국인 이민을 막았다. 철도 건설 등에 동원된 중국 막노동꾼이 임금 하락과 실업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그들에 대한 학살마저 자행됐다. 그 때문에 미국 경제는 꽤 오랫동안 내상을 입었다. 유럽 주요국도 보호무역과 철도 국유화 등 정부 개입을 강화해 상황을 악화시켰다.

제1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전시 국채를 갚느라 돈을 마구 찍어내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겨우 물가가 잡히자 대공황이 터졌다. 생산이 40%나 줄고 실업도 속출했다. 나치당은 생활고에 지친 국민의 불만을 파고들었다. 기성 대의정치, 프랑스와 유대인을 적으로 몰아세운 선동이 먹혔다. 유대인에게 가장 너그러웠던 독일은 반(反)유대의 본산으로 전락했다. 같은 시기 대공황을 맞은 서구 열강도 공조 대신에 제 살길만 찾아 보호무역과 환율전쟁에 몰두했다. 그로 인해 세계 경제는 10년 가까이 뒷걸음쳤다.

독일 본대학 마누엘 풍케 교수 등이 세계 경제의 90%를 차지하는 60개국을 분석했더니 2018년 16개국에 포퓰리스트 정권(좌파 7개, 우파 9개)이 들어섰다. 21세기 초 4개국(좌우파 각 2개)에서 2008~2013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급증한 것이다. 득표율만 따지면 그들의 약진은 더 눈부셨다. 백인 근로자 표심을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보호무역, 고립 외교와 유권자 편 가르기 노선도 이때 잉태됐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세르게이 구리예프 교수 역시 경제 위기가 포퓰리즘의 자양분이라고 본다. 그는 포퓰리스트의 특징을 서민과 엘리트로 편 가르기, 다원주의 배격, 견제 무력화, 반세계화, 난제 해법의 단순화로 손꼽는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윌리엄 갤스턴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서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포퓰리스트는 끊임없이 ‘공공의 적’을 만들어내야 영향력을 유지한다.

우리는 이런 포퓰리즘에 취약하다. 남과 비교하고 한쪽으로 쏠리는 성향이 유달리 강한 탓이다. 100여개국 ‘세계 가치관 조사(WVS)’에서 복지에 대한 정부 책임과 분배정책의 중요성에 동의하는 비율도 우리가 러시아와 함께 가장 높다. 중국이나 복지 선진국보다 정부 역할을 더 중시한다. 위정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최근 아파트값 상승을 둘러싼 논의만 봐도 그렇다. 무척 복잡한 사안인데도 차분한 진단과 숙의는 거른 채 감성에 휘둘리고 속전속결로 덤빈다. 다주택자 때리기도 지나치다. 공직자니까 모범을 보여야 하겠지만 굳이 언제까지 집을 팔라고 여론몰이해서야 되겠나. 한때 정부가 독려까지 했던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뭇매도 정상이 아니다. 코로나 공황을 빌미로 포퓰리즘이 새로운 일상이 되지 않도록 다 함께 경계해야 한다.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