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규제에 졌다”… 폭탄세일로 버티던 대형마트 줄폐점

국민일보

“온라인 쇼핑-규제에 졌다”… 폭탄세일로 버티던 대형마트 줄폐점

쌓여만 가는 영업 적자 감당 못해

입력 2020-08-13 00:06 수정 2020-08-13 00:06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롯데마트 서현점 점포정리 세일 중 손님들이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롯데마트 서현점은 오는 31일 폐점한다. 분당=문수정 기자

11일 오후 5시 경기도 성남시 롯데마트 서현점. 저녁 장을 보려는 사람들이 서서히 몰리는 시간이었지만 대형마트의 활기를 찾기는 힘들었다. 입구에는 8월 31일 영업 종료를 안내한 ‘고별 대처분’ 포스터와 ‘그동안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1층 매장에는 1000원, 2000원, 3000원에 판매되는 옷과 신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10명도 안 되는 이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었다. 활기가 떠난 곳에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1999년 3월에 문을 연 롯데마트 서현점이 이달 말 수익성 악화로 문을 닫는다. 21년 동안 분당 서현역 상권의 한 축을 담당했던 롯데마트는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결국 사라지게 됐다.

오프라인 유통업계 1위인 롯데쇼핑은 올해 초 백화점·마트·슈퍼 등 718개 오프라인 점포 가운데 약 30%(200곳 이상)을 5년 안에 구조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폐점 점포는 마트와 슈퍼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마트가 문을 닫는다’는 것의 의미

손님이 뜸한 오후 3시쯤 롯데마트 서현점은 쇠락한 마트의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곳곳에 ‘파격세일’ ‘70% 할인’ 안내가 붙어 있었지만 할인 판매 기간의 들뜬 분위기는 보이지 않았다.

가공식품 진열장에는 물건이 새로 채워지지 않아 곳곳이 비워져 있었고, 공산품 매대에는 할인된 가격이 붙은 재고 물품들이 쌓여 있었다. 대형마트에 활력을 주는 시식행사도 없었다.

11일 경기도 성남시 롯데마트 서현점 지하 1층 매장의 생수 코너가 드문드문 비어 있다. 생수는 수요가 많은 제품이지만 점포정리 중이라 새 제품을 채워넣지 않고 있다. 분당=문수정 기자

그나마 오후 5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차츰 사람들이 늘어갔다. 남편과 함께 마트에 온 채모(58)씨는 서현점 폐점에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채씨는 “여기가 우리 집에서 살살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이라 자주 왔는데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며 “이제 나이든 사람들도 온라인 쇼핑을 배우든, 아니면 차타고 다른 데로 나가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트가 문을 닫는 것은 오프라인 장보기에 익숙한 50대 이상에게만 아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이들도 ‘주말에 갈 만한 곳’ 한 군데를 잃게 되는 셈이다.

유치원생 두 자녀와 함께 방문한 이모(43)씨는 “아이들 데리고 마땅히 갈 곳이 많지 않아서 마트가 참 고마웠는데 문을 닫는다니 속상한 마음이 든다”며 “대안을 찾으려면 찾겠지만 집에서 더 멀어지니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마트의 폐점은 일자리와 생업 터전이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다. 롯데마트는 직원들에게 반경 40㎞ 안팎의 다른 점포로 재배치를 약속했다. 순환 근무를 하는 정규직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집 근처로 취업한 무기계약직에게는 고민스러운 상황이다.

푸드코트에 입점한 소상공인들도 갑갑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입점 업체와 롯데마트 사이에 큰 갈등은 거의 없는 상황으로 파악됐다. 롯데마트 측은 보상금을 지급하고, 인근 점포로 이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전을 결정하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보니 막막한 상황이다.

푸드코트에서 6년 이상 장사를 해온 60대 정모씨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가 그래도 혼자 장사하기 나쁘지 않았는데…”라며 “불경기에 코로나까지 겹치니 누가 버티나. 대기업도 이렇게 문닫는 거 보면 참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11일 경기도 성남시 롯데마트 서현점 입구에는 폐점을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분당=문수정 기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업계

서현점은 롯데쇼핑이 올해 폐점 조치한 8번째 점포다. 롯데쇼핑은 올해 16개 점포를 폐점조치할 예정이다. 지난달 말까지 빅마켓 신영통점과 킨텍스점, 롯데마트 양주점 천안아산점 천안점 의정부점 등 6곳이 영업 종료했다. 금정점이 서현점과 함께 이달 말 폐점을 앞두고 있다.

롯데마트 서현점이 몇 년 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고는 하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가 결국 문을 닫게 됐다는데서 적잖은 충격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인근 부동산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근처 한 부동산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롯데마트가 폐점하고 주상복합이든 오피스든 새 건물이 들어서면 서현역 상권 전반에 활력을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롯데마트는 솔직히 이미 지역 상권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는 못 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2분기 실적을 보면 납득이 간다. 롯데마트 2분기 매출은 1조4650억인데 영업적자가 578억원 발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5% 떨어졌고, 분기 영업이익은 최대 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롯데마트의 폐점은 점포정리 이후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놓고 폐점 수순을 밟은 게 아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폐점을 먼저하게 됐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으로 분석된다.

롯데쇼핑 2020년 2분기 실적.

대형마트의 구조조정은 롯데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홈플러스도 구조조정을 예고했고, 안산점과 대전탄방점이 폐점 수순을 밟고 있다. 홈플러스 노조는 이와 관련해 파업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마트도 지난해 첫 분기 적자를 내는 등 대형마트들은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온라인 쇼핑 강세에 규제까지 ‘이중고’

잘 나가던 대형마트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데는 2가지 요인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다. 2010년대 중반부터 이커머스 업계가 빠른 속도로 오프라인 유통업계를 잠식하고 있고, 유통 규제가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에 몰리면서 돌파구 마련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커머스 업계는 201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25조원이었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135조원으로 10년 새 5.4배나 몸집을 키웠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연평균 20%가량씩 거래액이 증가했다.

자료: 통계청

온라인 쇼핑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오프라인 유통업계도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5월 온라인 쇼핑 거래 규모를 보면 온라인몰만 운영하는 곳의 비중이 74.2%에 이른다. 지난해 5월에는 이 비중은 67.8%였는데 1년 새 23.8%나 늘었다.

반면 대형마트처럼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곳은 온라인 거래 규모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9.6% 줄었다. 이는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집중된 규제 때문으로 풀이된다.

롯데 신세계 등 대기업이 포진한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오랫동안 각종 규제에 시달려 왔다. 대형마트 실적이 최고점을 찍던 2010년대 초반에는 상생으로써 의미 있었던 규제들이 지금은 성장을 내리누르는 것으로 변질됐다. 특히 월 2회 의무 휴업이 오프라인 점포의 온라인 주문까지 막으면서 오프라인 중심 유통 기업들의 성장 동력을 막고 있다.

“규제 대신 숨통 틔워줘야”

여기에 최근 집중 발의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업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일몰법인 월 2회 의무 휴업이 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규제가 강화될 것 같은 분위기다. 대형마트 뿐 아니라 백화점, 복합쇼핑몰에까지 월 2회 의무휴업을 적용하는 게 발의된 개정안들의 주요 내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은 중소기업이나 중소상공인이 점포에 입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대기업에 집중된 유통 규제는 중소상공인에게도 타격이 된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


소비자들에게는 문화 공간으로써 기능하는 백화점·대형마트·쇼핑몰을 원하는 때 갈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노년층을 포함해 정보소외계층의 권리가 침해되고,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 권익에도 반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도 규제 중심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마트 규제를 일몰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규제를 키우겠다니 너무 무리한 입법”이라며 “중소상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좋으나 이 때문에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과 소상공인이 있고 유통산업 발전에도 저해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무너지는 것을 업계의 경쟁력 저하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라인이 강화되더라도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필요성과 소비자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으로 더 쏠리게 되면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정보소외계층의 복지 측면에서 퇴보하는 셈이 된다”며 “규제로 경쟁을 제한하면 유통업의 혁신 또한 가로막게 된다”고 비판했다.

업계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규제에 대한 불만이 높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라지만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며 “규제 일변도를 넘어서서 생산적으로 상생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하는 때가 왔다”고 말했다.

문수정 정진영 기자 thursday@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