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음식의 추억과 먹방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음식의 추억과 먹방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0-08-14 04:06

최근 불만을 호소하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직업상 외국에 살고 있는데 요즘은 한국, 아시안 마트가 흔하고 한국 방송도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어 그동안 향수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음식을 소재로 쓴 과거의 내 글을 읽고,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이 몰려와 타지 생활이 급속도로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시판 제품뿐 아니라 마트에서 만들어 파는 김치와 잡채, 불고기까지 한국 음식이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고향의 맛은 그 어디에도 없더라는 말에 약간의 미안함과 함께 예전에 지인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외국에서 상당히 오래 공부했던 그는 유학 초기, 전화도 편지도 쉽지 않던 시기라 여러모로 현지 적응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언어도 인종차별도 아닌 바로 음식이었는데, 당시 어려운 형편에 시간과 돈을 허비할 수 없어 제일 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공산품만 쌓아두고 먹었단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어디선가 비슷한 냄새라도 나면 그 시기 힘든 기억이 떠오르며 속이 울렁거린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세가 기울어 가족이 모두 외국 생활을 했던 또 다른 지인은 각자 바쁘게 일하다 모이는 늦은 저녁이면 없는 형편이지만 그 지역 재료들로 대충이나마 한국식을 만들어 먹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 막상 생활이 안정돼 한국에 돌아왔는데 이제는 그 음식이 그때의 그 맛이 안 나 아쉽다고 했다.

먹방이 유행이라고 한다. 소아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어린아이까지 동원한 먹방은 학대로 보여 마음이 불편하고, 음식으로 행복을 강요하는 듯해서 보기 거북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혼밥이 일반화된 지금, 타인이 먹는 모습에서라도 위로를 나누고 싶은 우리의 허한 마음이 안쓰럽다. 결국 우리가 음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이어서만이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그와 연관된 추억들 때문일 테니 말이다.

배승민 의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