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말버릇

국민일보

[혜윰노트] 말버릇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입력 2020-08-14 04:06

글은 남고 말은 사라진다. 저자들을 설득할 때마다 사용하는 문장이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나를 책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제 나는 이 생각을 좀 더 응용하기에 이르렀다.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쓰려면 되도록 단단하게 읽고 생각하고 말하자고.

매일매일 문어체 원고를 읽는 업무를 수행한다. 어느 날 구어로 된 인터뷰 원고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이토록 정확한 단어와 논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말을 잘하는 재능은 타고나는 것인가.

대개 구어체 원고의 완벽성은 말 잘하는 재능보다 공들인 수정을 통해 성립할 가능성이 크다. 책으로 출간하려면 녹취를 풀고 문장화해야 하니까. 책에 어울리는 유려한 글로 만들기 위해 말의 결을 다듬고 말했을 당시보다 더 정확하고 맥락에 맞는 단어를 찾아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읽기에 모자람이 없을뿐더러 작정하고 쓴 글보다 촘촘한 구어체 문장을 보면서 여기에는 단어를 바꾸고 비문을 고치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이렇게 대화나 발표를 할 수 있다면 오해에서 비롯한 고통은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발화될 때부터 단단한 말, 이것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이 읽고 생각하고 말해보았을까. 협상이나 토론을 위해 기본적인 자료를 준비했다 해도 상대방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 흘리며 말을 못 잇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돌아서서 후회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그때 꼭 그 말을 해야 했으며 어떤 단어는 부적절했다는 뒤늦은 자각으로 괴로웠던 기억들.

말실수는 자신에게 되돌아와 난처한 입장에 빠뜨린다. 구설수에 오른 말은 그 변명마저 식상해지곤 한다.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오해입니다.” 적절히 해명되지 않은 변명은 또 다른 말을 낳으면서 문제를 증폭시킨다.

얼마 전에 나는 인터뷰이가 되어 기자를 만났다. 호의 가득한 기자의 질문에 기분 좋은 답들이 이어졌고, 그 인터뷰 기사는 밝은 기운이 가득한 센스 있는 지면에 펼쳐졌다. 이메일로 주고받는 인터뷰였다면 이렇게 생생할 수 있을까. 말맛과 현장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기사였다. 그런데 아뿔싸, 기사 중에 “작가를 유혹해 쓰게 하고”라는 문장. 내 평소 입말이 그대로 실렸다. 맥락으로 보자면 무슨 말인지 이해되고 넘어갈 대목이지만 내 눈엔 ‘유혹’이란 단어가 걸렸다. ‘꾀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라는 뜻의 부정적인 단어 ‘유혹’을 평소 잘 쓰던 참이어서 나도 모르게 입 밖에 튀어나온 것이다. “책 제목을 좀 섹시하게 뽑아야지” 같은 말버릇이 반영된 셈이었다. 큰일은 없었지만 후회는 무르지 못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정확한 단어들을 적절히 사용하고 문맥에 맞는 풍부한 사례들을 논리 속에 잘 배치해 상대방이 알아듣고 수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바쁜 우리의 대화는 대개 이런 여유가 주어지지 않고, 순발력이 필요한 시점이면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 구문들이 무의식중에 나온다. 운이 좋으면 어떤 말로도 진심은 통하겠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말하는데 요행을 어찌 바랄까.

누가 뭐래도 말하기 능력은 좋은 글을 읽는 데서 길러진다고 나는 믿는다. 글의 흐름과 적절하게 쓰인 단어들을 외우고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야 한다.

이성복 시인은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세요”라고 시 쓰기에 대해 조언했다.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하라고. 단어를 공들여 고르라고. 시를 쓰듯 말하기 버릇을 들이면 오해도 후회도 적어질 것이다.

‘유혹’이라는 말을 적절하게 쓰지 못한 나는 반성한다. 말버릇에서 벗어나려 한다. 습관을 고치면 나의 실수를 방지하고 상대가 다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읽은 것들이 말이 된다. 좋은 글과 단어가 나와 한 몸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책을 든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