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윤석열 대망론

국민일보

[세상만사] 윤석열 대망론

김경택 정치부 차장

입력 2020-08-14 04:02

여권의 집중포화를 맞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현실정치에 뛰어들까. 현직 검찰총장의 향후 정치 행보를 따지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이미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다. 윤 총장이 지휘했던 민감한 수사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그를 정치판에 끌어 앉힌 모양새다. 더욱이 윤 총장은 최근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찍었다. 잠시 가라앉는 듯했던 윤석열 대망론은 지난 3일 열린 신임검사 신고식 이후 다시 여의도에서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다. 당시 윤 총장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이 발언을 놓고 정치권의 해석은 분분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와 수사지휘에 불만을 표한 것이라는 해석부터 176석의 힘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비롯한 검찰 개혁을 밀어붙이는 여당을 겨냥한 비판이라는 주장까지 뒤따랐다. 여권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 같았던 윤 총장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장면이 연출됐다. 윤 총장에 대한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여권 인사들도 있었다. 윤 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임기 2년 중 1년가량 남았는데도 더불어민주당은 마치 고사 작전에 들어간 듯 윤 총장을 코너로 몰아붙였다.

공익의 대표자이자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여받은 윤 총장이 야권의 차기 주자로 떠오른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다. 윤 총장만큼 여야의 평가가 롤러코스터를 탄 인물도 없을 것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은 윤 총장의 이름을 유세장에 끌어들였다. 총선구호 중 하나가 “윤 총장을 지키려면 통합당이 과반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이나 여당의 공격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보수층의 더 많은 지지를 끌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서울에서 태어난 윤 총장의 부친이 충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JP의 뒤를 이을 충청 대망론”이라는 과포장된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원래 윤 총장은 여권의 기대주였다. 적어도 검찰 개혁 작업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다. 문 대통령은 2019년 7월 국회에서 야당 반발에 막혀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황에서 윤 총장을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식에서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호칭하며 “아주 국민 기대가 높다”고 치켜세웠다. 당시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은 “대통령은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는 임명 강행을 포기해야 하고, 윤 후보자 역시 스스로 사퇴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조직의 명예를 지켜야 할 것”이라며 임명에 반대했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윤 총장이 어떤 방식으로 임기를 마칠지 여부에 쏠려 있다. 그가 명패를 던지듯 나가든 소임을 묵묵히 마치고 나가든 그 이후는 윤 총장 자신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야권에선 퇴임 후에도 윤 총장에 대한 공격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만 윤 총장이 보수정당에서 무언가 역할을 맡게 될 경우에도 꽃길이 펼쳐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야당이 윤 총장의 사이즈에 꼭 맞춘 꽃가마를 준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최근엔 야당에서 윤 총장의 정치적 가능성을 평가절하하는 주장까지 나온다. 과거 국가공무원 출신 대선 주자나 당의 리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속절없이 무너진 사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윤 총장이 보수 정권의 심장부에 칼을 겨눴던 강골 검사였다는 점도 부정평가 요인으로 거론된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진보 정권의 칼잡이였던 윤 총장을 보수의 리더로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경택 정치부 차장 ptyx@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