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긍휼의 시선으로 보라

국민일보

[기고] 긍휼의 시선으로 보라

이재준 고양시장

입력 2020-08-15 04:03

예전에는 물난리가 많고 규모 또한 컸다고들 합니다. 잦은 태풍으로 비가 일시에 많이 와서도 그랬겠지만 치수가 덜된 탓도 있었지요. 특히나 1960·70년대엔 봄이면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져 파종이나 모내기 때 물을 대야 하는 농군들의 애를 태우다, 7~8월이면 구름과 비가 순식간에 몰려와 온 대지를 바다로 바꿔놓고는 했습니다. 이젠 산림녹화 사업으로 숲도 울창하고 초대형 댐에 배수펌프며 수로가 잘 갖춰져 그나마 이게 어딘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이기(利器)에 우쭐해 하늘의 무서움을 잠시 잊는 그런 우매함 같은 거라 할까요.

포스트 코로나를 위해 지역경제 살리기, 일자리 만들기에 온 역량을 기울여야 할 요즘 고양시와 경기북부는 물론 전국에서 50일에 가까운 역대 최장의 장마로 인한 초대형 수해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국은 코로나19와 유사해 전 지구촌이 하나 같이 고통받고 있다는 겁니다. 자연재해마저 어느새 글로벌화한 탓일까요.

코로나19, 대가뭄, 초대형 수해 등의 원인 가운데 많은 몫이 인간에 의한 것입니다. 일례로 고도의 산업화와 문명의 이기를 탐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그것이지요. 이젠 겸허한 마음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탄소 배출을 줄이고, 조금 불편해도 덜 쓰고 덜 먹고 더 걷고 재활용하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할 때입니다. 정부와 고양시가 꿈꾸는 ‘그린 뉴딜’은 그저 정치적 구호나 공약으로 끝내서는 안 될 다음 세대를 위한 동시대인들의 책무입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돼지열병, 코로나19 등 잇단 재해들에 현장의 공직자는 물론 국민의 가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기초지방자치단체, 그 작은 정부들의 눈물 어린 대처로 어찌 하늘의 엄중함을 달래고 이겨낼 수 있을까마는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하고 간절히 외쳐 구하면 희망은 분명 있겠지요.

고양시는 지난 1월 26일 지역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재난대책본부를 꾸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해왔습니다. 세계인을 놀라게 한 고양안심카선별진료소(드라이브 스루)와 전국 최대의 ‘알바 6000 프로젝트’를 통해 방역과 일자리 만들기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또 피폐해진 골목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상공인 특례보증 확대, 고양페이 인센티브제 연장, 음식점·카페 옥외영업 임시 허용 등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방문판매와 종교 소모임 등으로 인한 집단감염 발생으로 다시 백척간두에 서게 됐죠. 그러나 초심으로 돌아가 민·관·의료계가 하나 돼 문을 잠시 닫았던 안심카선별진료소를 다시 열고 마스크 바로 쓰기 캠페인 등을 통해 시민 안전 확보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108만 고양 시민과 국민께 감사를 드립니다. K방역의 성공신화에는 정부와 지자체 차원을 넘어 우리 국민의 끈기와 인내, 위기 극복의 지혜가 산처럼 우뚝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마와 태풍으로 무너져 내린 산과 구릉, 가옥들을 다시 정비하고 세우는 현장에도 벌써 자원봉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조선 기름 유출로 폐허가 됐던 서해안을 다시 살린 그때의 기적처럼 말입니다.

수해 복구와 포스트코로나를 향한 첫걸음은 결코 거창한 경제이론이나 구호가 아닙니다. 보금자리를 잃은 슬픔, 질병의 막연한 공포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암흑의 터널을 함께 탈출할 배려와 사랑의 힘입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뿐인 지구를 보시기에 좋은 행성으로 복원하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일입니다. 선한 손으로 선한 일을 행할 때 우리는 보람과 행복, 삶의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부디 이 푸른 지구를 지키는 일꾼의 자긍심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 이 땅의 정치인과 위정자들은 진보와 보수, 여와 야를 넘어 겸허히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온 국민의 심경을 보듬을 따뜻한 마음과 언어, 긍휼의 시선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말은 절제하고 실천으로 모범을 보일 때입니다. 오늘 새벽 출근길도 입에는 마스크, 손에는 장대비 가릴 큰 우산, 그리고 예비용 양말까지 챙겨 종종걸음으로 나서는 국민을 위해서입니다.

이재준 고양시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