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공쳤구먼”… 코로나·장마에 생계 위협받는 일용직들

국민일보

“오늘도 공쳤구먼”… 코로나·장마에 생계 위협받는 일용직들

새벽 남구로역 인력시장 르포

입력 2020-08-14 00:10

“정리 나갈 분 계세요?”

인력사무소에서 나온 직원이 펜과 종이를 든 채 목청을 높였다. 건설 현장의 장비 뒷정리, 청소 등을 할 구직자를 찾는 것이었다. 별다른 기술을 요하지 않는 대신 일당도 목수나 철근공의 반토막 수준이지만 곧바로 지원자가 나왔다.

아직 주변이 캄캄하던 13일 오전 5시, 서울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일대는 인파로 북적였다. 100m 넘는 줄이 삼거리 모퉁이를 돌아 늘어섰다. 모두 인력사무소의 부름만 기다리는 일용직 구직자들이었다.

김모(56)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김씨는 최근 40여일 동안 이틀 일했다. 하루에 25만원씩, 총 50만원이 올해 7, 8월 김씨가 벌어들인 전부였다. 현장 일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았지만 일감을 찾지 못했다. 이날도 ‘데마’(허탕)가 났다. 김씨는 “몇 푼이라도 벌어야 가족 볼 낯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했다.

길가에 걸터앉아 있던 임모(58)씨는 어색한 억양으로 “한두 달 일 없어요”라고 하곤 다시 휴대전화 액정 속 장기판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 선양 출신의 교포 임씨는 2003년 한국에 들어온 뒤 목수로 일하고 있다. 임씨는 “비가 계속 와 일이 더 없다”고 말했다.

오전 6시를 지나자 하늘은 한층 밝아졌다. 환경미화원 3명이 빗자루를 들고 일대의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쓸어담았다.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구직자들은 흩어졌다.

하지만 자리를 바로 뜨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A씨(61)는 삼거리 모퉁이의 부동산 앞 바닥에 걸터앉아 차도 쪽을 바라봤다.

30년 경력의 철근공 A씨도 중부지방에 퍼부은 역대급 장마 앞에선 도리가 없었다. 지난 2주간 한 번도 일을 나가지 못했다. 비가 잠깐 그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현장에 고인 물 때문에 작업 개시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A씨는 지방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자리가 더러 나도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가족 때문이다. A씨의 부인은 필리핀 출신으로 봉제공장에서 일한다. 입대를 앞둔 큰아들은 야간 알바생이다. 두 딸은 각각 고등학생과 초등학교 6학년이다. 오래 집을 비우기 불안하다. A씨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많이 낳았을까 싶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고용시장에서 취약계층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한숨은 통계로도 증명되고 있다. 12일 통계청이 내놓은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임시·일용직 근로자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해 43만9000명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날씨에 크게 좌우되는 건설현장 등에는 역대 최장 장마 역시 역대급 악재다.

A씨는 대화 도중 “가족한테도 미안하고 할 일도 없으니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여기 나처럼 답답해서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했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있던 A씨가 배낭을 집어들고 자리를 뜬 건 이미 사방이 환하게 밝아온 6시40분쯤이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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