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해석의 갈등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해석의 갈등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입력 2020-08-14 04:04

해석의 충돌이냐 진리의 충돌이냐? 이것을 구별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땅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의견 간 갈등은 해석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해석은 부차적이고 보조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학계의 한 분파인 근본주의적 문자주의에 의하면 성서는 문자 그대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없는 단순한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여성은 교회에서 가르칠 수 없다고 성서에 쓰여 있으면 단순하게 그것이 진리다. 당연히 여성에게 목사안수를 주는 것은 진리를 거스르는 일이 된다. 토를 달 필요가 없다. 그러한 주장이 나름대로 신앙고백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기독교인을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수긍하기 힘들다.

이 세상에 해석을 통하지 않고 이해되거나 전달되는 진리가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진리가 언어의 형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진리를 담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편리한 그릇이다. 인간의 다양한 의식과 경험 및 신의 계시에 관한 진리는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 많지만 그것이 언어의 형식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도, 후대에 전해줄 수도 없다.

그러나 언어는 진리를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한 편의적 수단이기 때문에 진리를 언어의 그릇에 담을 때나 나중에 그릇에서 꺼낼 때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여러 점에서 요즘 컴퓨터에서 동영상을 압축할 때 사용하는 코덱의 원리와 비슷하다. 코덱은 코딩(coding)과 디코딩(decoding)의 합성어인데, 대용량의 동영상 정보를 특별한 원칙에 따라 압축하는 코딩과 나중에 그것을 재생하기 위해 다시 압축을 푸는 디코딩으로 이뤄져 있다. 디코딩하기 위해서는 코딩할 때 사용했던 원리를 그대로 역방향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는 또한 식재료를 냉동하고 해동하는 것과 비교할 수도 있는데, 신선한 식재료를 냉동하면 오래 보존할 수 있고 이송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갖고 요리하려면 우선 해동해야 한다. 냉동과 해동의 과정에서 식재료의 질이 어느 정도 손상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그러한 손실과 결함은 코덱과 언어에도 적용된다. 코덱이 일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이 만든 일련의 규칙과 다양한 종류의 코덱이 존재하는 것처럼, 언어도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약속한 규칙의 체계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시대와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어떠한 인간의 언어도 진리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서로 대립되는 의견 충돌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해 어느 쪽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를 논하기에 앞서서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진리는 문자주의가 말하듯이 성서의 어떤 구절을 단순히 인용함으로 주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분명 영원하고 완전하다. 그러나 그 진리를 파악하는 인간의 수준은 늘 부족하다. 인간의 진리는 부분적이고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한 판단도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유럽 중세 교회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이 땅에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누구도 자신이 아는 진리만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진리는 하늘에 맡겨두고 우리는 최선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개신교 안에 다양한 교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한국 교회 안의 의견 대립은 해석의 갈등이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자의 의견을 경청하며 각자의 이해의 폭을 넓혀갈 때 우리는 진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