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프레임 정치에 갇힌 한국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프레임 정치에 갇힌 한국

입력 2020-08-25 04:01
저급한 프레임 정치는 적으로낙인 찍고 제거 대상 삼아야 효과 발휘…
적대적 공생관계 성립되는 구조로 이어져

여야 국내 프레임 정치 매몰돼 국가 리더십 사라지고
주변국의 국익 극대화 전략에 아무런 힘도 못써


프레임 전쟁은 구도의 전쟁이다. 시작부터 싸움의 구도 자체를 유리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적과 싸울 장소와 시간 등 조건을 우리 편이 최대한 유리하게 정하려는 것과 같다. 산등성이에서 엄폐물을 이용하면서 골짜기에 적을 몰아넣고 싸우면 궤멸시키기 쉽다. 정치에서는 산등성이를 선점하는 게 프레임 전략이다. 좋은 말로 해서 전략이지, 보다 나은 위치 선점을 위해선 합리적 판단과 상식적 결정 같은 전략만으론 안 된다. 잘못하면 내가, 우리가 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못할 일이 없다. 악마와도 손을 잡는다는데…. 상대방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서로 온갖 궤변과 가짜뉴스, 약속 뒤집기가 동원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이런 걸 잘하면 우리 정치에서 자기들끼리는 전략가라 불러주기도 한다. 상식과 인식이 혼란스러워진다.

코로나19는 한국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돼 버렸다. 정치고 경제고 사회생활이고 없을 정도다. 2차 대유행 위기가 닥친 지금, 정치는 곳곳에서 크고 작은 프레임 전쟁으로 날이 지고 샌다. 여권은 ‘전광훈 프레임’을 걸었다.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는 8·15 광화문 집회와 이후 당국의 방역 조치 과정에서 반공동체적 행위를 했다. 그는 종교지도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고, 기독교를 대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걸 빌미로 2차 대유행의 모든 책임을 전 목사와 대다수 교회에 돌리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야당은 정부가 쿠폰 발행 등 방역 조치를 느슨하게 함으로써 2차 대유행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정부 방역 실패 프레임’으로 코로나 정치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당은 ‘미래통합당=전광훈 극우’로 함께 묶는 전술을 구사하고, 야당은 일부 교인들의 비협조를 일반화시킨다고 비난한다. 검찰 문제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조치를 놓고 한쪽은 검찰 개혁으로, 다른 쪽은 검찰 사냥개 만들기로 주장한다. 검찰 개혁이란 본질은 사라져 버린 듯하다. 피해는 결국 어디로 가겠는가.

프레임 전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적이다. 적은 나의,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곧바로 증명해 주는 명징한 객체다. 적의 존재는 나의 정체성을 뚜렷이 인식시켜 준다. 또 우리 편의 가치 신념 방향성 등에 대한 장애물을 제공하기 때문에 제거·척결 대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와 전체주의 또는 세력 규합을 위해선 무엇보다 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적을 만드는 일은 정치에서 무척 중요하다.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게 정치”(카를 슈미트)라는 명언은 정곡을 찌른다. 우리가 누구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고 치자. 그럴 때 적을 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해지고, 가치·신념·방향성이 확실해진다. 적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적의 존재가 뚜렷해지고 구체화될수록 나와 우리의 존재 이유와 역할도 명료해진다. 그러니 적은 우리 편의 가장 소중한 동반자다. 적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 적대적 공생 관계는 이렇게 형성된다. 적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낙인찍기다. 자기편이 아닌 사람과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빠를수록, 먼저 할수록 효율적이다. 백지에 그림 그리는 효과가 있는 것이니까.

팬덤 정치 이른바 ‘~빠 정치’는 저급한 프레임 정치를 활성화하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준다. 최근 들어 프레임 정치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빠 정치’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태극기부대를 상징으로 하는 극우세력과 여권 극렬 지지층은 그래서 적대적 공생관계이고 정치적 동반자이다. 적을 확대 재생산하고, 그것이 생존전략인 정치, 거기에서 표를 얻는 일부 정치인들, 그게 지금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지난 주말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방한했다. 웃으면서 왔지만 미·중 사이에서 줄 잘 서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세계 질서 관리자 역할을 포기한 채 돈이나 더 내라고 한다. 나라 밖 스트롱맨들은 국익에 관한 한 조금의 양보도 없다. 우리는 저급한 국내 프레임 정치에 몰입돼 국익을 챙길 생각조차 못하는 듯하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들은 프레임 정치에 갇혀 있다. 정치 리더십은 사라졌고, 대통령은 별로 말이 없다. 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최대한 확보할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2020판 시일야방성대곡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편집인 m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