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절대적 자유는 없다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절대적 자유는 없다

입력 2020-08-26 04:01
기독교 참칭한 ‘전광훈교’에 현혹된 소수의 무리들
종교의 정치화가 잘못된 형태로 나타난 반사회적 현상
국민 생명 위협하는 자유는 보호할 가치 없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 박형순 부장판사는 요즘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일 것 같다. 자신이 허용한 국가비상대책국민위원회, 에이프릴주권회복운동본부, 일파만파의 광복절 집회가 수도권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의 기폭제가 되어서다. 뿔난 시민들은 그의 해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고, 며칠 새 답변 요건인 20만명 선을 넘겼다. 여당 의원은 ‘판새’(판사 새X)라고 했다. 박 판사 귀가 몹시 가렵겠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 기본권 중 하나다. 마땅히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로 이를 제한하려면 엄격한 전제조건이 따른다. 재판부도 이러한 헌법정신에 입각해 세 단체가 서울시를 상대로 낸 집회 금지 조치 집행 및 효력 정지 신청을 받아들였을 거다. 재판부는 “신고된 집회시간보다 실제 집회시간은 4~5시간으로 비교적 짧고, 100여명의 소수 인원이 참석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된다”며 극우 성향 보수단체 일파만파의 집회를 허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재판부로서는 억울할 수 있겠다. 실질적 잘못은 신고 내용대로 집회를 하지 않은 단체에 있는데 광복절 보수단체 집회 참석자들과 함께 도매금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으니 말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이들 단체 집회만 허용됐느냐는 점이다. 광복절 집회와 관련해 법원에 접수된 집회 금지 집행정지 신청 건수는 총 10건이다. 그러나 세 단체의 신청을 제외하고 다른 재판부가 심리한 나머지 신청은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됐다. 이들 재판부가 헌법정신을 몰라서 집회를 불허하지는 않았을 거다. 서울시의 집회금지 명령이 공공의 안녕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박 판사가 깔아준 판에 재판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예상했던) 인파가 몰리면서 결국 사달이 시작됐다. 광복절 집회발 코로나19 확산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상자들이 검사를 받기는커녕 비협조를 넘어 방역 당국의 조치를 악으로 규정,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저항한다. 그 중심에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과학을 부정한다. 보건소에서 검사받으면 무조건 양성이라는 등의 온갖 가짜뉴스로 대중을 선동한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야외 집회에서는 확진자가 전파된 사례가 한 번도 없다”고 가짜뉴스를 퍼나른다. 과학을 얘기해야 할 의사라는 자가 대중을 위험에 빠뜨리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무책임하게 내뱉는다.

지금 곳곳에서 목도되는 ‘전광훈교’ 광신자들의 해악은 사회의 임계치를 넘었다. 오죽하면 “신천지는 양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을까. 잘못은 이들에게 있는데 그 피해의 불똥은 엉뚱하게 PC방이나 노래방 등에 고스란히 튀었다. 역시나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다. 극소수 교회의 반사회적 행위 때문에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예전 같지 않다.

이들은 순교를 각오한다고 한다. 자신들의 싸움을 ‘공산당 하수인’ 문재인 정권에 대한 성전에 비유한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맹목적 신앙에 사로잡혀 테러를 일삼는 IS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들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보다 “우리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전 목사 말을 따르는 무리들이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니 검사받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던 전 목사가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막무가내다. 이런 걸 옛날 어른들은 혹세무민이라고 했고, 조선에선 참형으로 징치했다.

기독교를 참칭한 ‘전광훈교’의 행태와 주장은 잘못된 종교의 정치화가 빚어낸 반사회적 현상이다. 이들은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다. 문재인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건 이들의 자유다. 이들이 광복절 집회를 연 목적도 자신들의 주장을 더 확산시키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때 우군이었던 미래통합당조차 관계를 부정한다. 굳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패트릭 헨리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자유는 생명과 맞먹는 소중한 가치다. 그렇다고 자유가 생명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헌법은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의 이유로 기본권의 일부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유는 이미 자유가 아니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