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펭귄의 인사

국민일보

[이지현의 티 테이블] 펭귄의 인사

입력 2020-09-05 04:01

펭귄만큼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동물은 드물 것 같다. 1953년 미국 유니버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칠리 윌리(Chilly Willy)’를 시작으로, BBC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핑구어로 말하는 ‘꼬마 펭귄 핑구’, 어린이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한국 EBS TV ‘뽀로로’, 2030의 최애 캐릭터 ‘펭수’에 이르기까지 펭귄은 많은 사랑을 받는 스타 동물이다.

그런데 왜 펭귄일까? 새하얀 얼음 위를 어린아이처럼 종종 걷고 토실한 배를 썰매 삼아 미끄러지기도 하는 특유의 귀여움, 날개는 있지만 날지는 못하고 뒤뚱거리며 걷는 신체의 희극성, 까만 연미복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생김새 등은 동심을 사로잡을 만하다. 그런데 이 펭귄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펭귄의 ‘생존전략’이다.

펭귄이 사는 남극의 겨울 기온은 섭씨 영하 60도에서 70도를 오간다. 펭귄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방법은 ‘집단적 체온 나누기’이다. 눈보라가 덮치기 직전 펭귄들은 본능적으로 서식지 중앙을 향해 모이기 시작한다. 펭귄들은 자신의 체온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어깨를 맞댄다.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펭귄의 생존법, 허들링(Huddling)이다. 대열 안쪽의 펭귄은 자신보다 바깥에 있는 펭귄들이 눈폭풍을 막아줘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하지만 바깥쪽 펭귄들은 눈폭풍을 맨몸으로 견뎌야 한다. 신비로운 점은 펭귄의 배려이다. 무리의 바깥에 있는 펭귄은 동료와 자리를 바꿔가며 점점 안으로 들어오고, 안에 있던 펭귄은 동료와 자리를 바꿔가며 바깥으로 나간다. 그 어느 펭귄도 안쪽에만 있겠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지난 한 주, 모두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면 가장 먼저 칼바람을 맞는 사람은 소상공인들이다. 매상이 3분의 1 토막 난 식당은 물론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문 닫는 곳도 잇따르고 있다. 종업원 인건비라도 줄이려고 한 주 동안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적지 않다. 임대료 걱정이 앞서는 소상공인들은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펭귄의 집단적 체온 나누기와 같은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힘겨운 자영업자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집단적 체온 나누기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두 청년이 선결제 플랫폼 ‘MITZY(밋지)’를 만들었다. 선결제하면 점주들은 당장 급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고객들은 할인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대전지역 대학생들은 ‘카이스트-어은상권 상생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할인된 가격으로 특정 식당의 메뉴를 미리 결제하는 방식이다. 또 대구시 간호사 10명은 코로나19 지역감염 확산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광주로 달려갔다. 소상공인을 돕는 선한 건물주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역 상생과 공익적 소비가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혹한의 추위로 비유되는 재난은 사람들을 연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각자도생으로 빠지게도 만든다. 차이는 공감대 형성이다. 펭귄이 눈보라 앞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원동력은 연대다. 동료를 믿으며 자신의 생존만 고집하지 않는 펭귄 연대가 필요한 시간이다. 연대는 이웃을 서로 돕는 일이지만, 자선과는 다르다. 자선이 시혜적이라면, 연대는 상호 의무로 묶인 관계다. 자선이 누군가의 불행을 안타깝게 여기는 접근이라면, 연대는 위험을 분산시키는 공동의 노력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앞이 보이지 않고 힘겨울 땐 연미복을 입은 남극 신사 펭귄의 깍듯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어린 시절 보았던 꼬마 펭귄 칠리 윌리가 조그만 털모자를 벗고 인사하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삶이 힘겨울 땐 딱 하루만 살아요/ 위선이나 탐욕도 부리지 말고 하루 치의 욕심에 만족하기로 해요/ 삶이 힘겨울 땐 딱 하루만 고민해요. 내일은 더 좋아질 거란 생각 말고 하루 치의 사랑에 만족하기로 해요/ 삶이 힘겨울 땐 딱 하루만 살아요/ 투박한 검정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바람이 부는 반대쪽을 향해 고개를 숙여요/ 치열하게 바람과 맞서는 기왓장처럼/ 삶이 힘겨울 땐/ 딱 하루만 살아요/ 대열에서 벗어나지 말고 공평한 체온을 나눠요/ 집단적 체온 나누기로 혹한을 버티는 펭귄처럼.”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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