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장신대 역사박물관 재개관 기념전

국민일보

[현장] 장신대 역사박물관 재개관 기념전

믿음의 씨앗이 나무로… 헌신의 역사 한자리에

입력 2020-09-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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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장신대 총장(앞줄 오른쪽)이 3일 서울 광진구 교내 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낡은 찬송가를 펴면 첫 장에 화가 목사가 그린 꽃 그림이 나온다. ‘변치 않는 사랑’이란 꽃말의 백합에 빨갛고 노란 꽃술, 연둣빛 잎사귀가 정성스레 그려져 있다. 한쪽엔 ‘김정희 집사님을 위하여, 1981년 신춘, 이연호 그림’이란 메모가 있다. 빈민을 사랑한 화가 목사, 이연호(1919~1999) 장로회신학대 초대 박물관장이 이촌동교회 성도들에게 직접 그려 선물한 성경과 찬송가 중 하나다.

장신대는 오는 12월 31일까지 교내 마포삼열기념관 3층에서 ‘씨는 자라 나무가 되어- 역사박물관 재개관 기념전’을 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사전 예약자에 한해 오전과 오후 각각 2시간씩 공개하는 전시장을 3일 찾았다. 판잣집과 군화, 낙타와 사람 얼굴이 펜으로 그려진 작품이 눈에 띄었다. 전시를 기획한 미술사가 이상윤씨가 해설했다.

“‘베들레헴 위 헤롯 군인들의 군화…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가난 속에 돌아가셨다’가 제목입니다. 이연호 목사님의 1962년 작품입니다. 한국에서 초현실주의 작품이 등장한 건 1980년대인데 이 작품은 20년 정도 빨랐습니다. 헤롯의 군화는 5·16 군사정변을, 판잣집 형태의 마구간은 부산의 빈민가를 상징합니다. 오른쪽 얼굴은 이 목사의 부친입니다.”

이 목사는 황해도 안악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춘천고 재학 시절 독서서클 상록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모색하다 2년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일본 빈민의 아버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를 흠모해 빈민 목회를 결심했다. 해방 후 조선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이촌동교회를 개척해 빈민 목회를 하며 의사 정용득 사모를 만나 결혼했다.

왼쪽 사진은 이연호 목사를 그린 연필 초상화, 오른쪽은 이 목사가 성도에게 그려준 백합. 강민석 선임기자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받은 돈을 교회에 헌금해 예배당을 세운 일로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소개됐다. 영어에 능통했던 그는 이를 시작으로 6·25전쟁 때까지 다섯 번 ‘타임’에 기사가 실렸다. 1961년 대한민국 국전에 입선했고, 66년엔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를 창립했다. 60년대 후반부터 한강 옆 이촌동 빈민촌 철거와 아파트 건립 현장을 세밀한 필치의 기록화로 남겼다. 83년엔 자신이 소장하던 예술품 400여점을 장신대에 기증해 오늘날 장신대 역사박물관의 밀알이 됐다.

전시장에는 김구 주석이 교회 건립에 보태라며 당시 돈 20만원의 헌금과 함께 보내온 친필서신, 박수근 화백의 연필 스케치 ‘교회당이 보이는 풍경’ 등도 있다. 장신대는 이 목사의 기증품 외에도 학교 설립자 마포삼열(Samuel A Moffet, 1864~1939) 선교사를 기념하는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마포삼열 선교사가 번역한 한시(漢詩) 형식의 교리서 ‘진리편독삼자경’ 원본을 처음 공개했다.

임성빈 장신대 총장은 “혼탁한 시대에 교회와 학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는 뜻에서 신학교를 세워 조선인 목사를 배출한 마포삼열 선교사와 평생 작은 자와 함께한 이 목사님의 기념 전시를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장신대는 코로나19로 여러 프로젝트가 위축됐지만, 역사박물관 재개관과 수장고 재정비, 디지털 스튜디오 마련 등에는 힘을 집중했다고 밝혔다. 임 총장은 “신학생과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여러 모습을 그리고 상상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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