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제2의 조국 사태인가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제2의 조국 사태인가

입력 2020-09-08 04:01

추 장관 아들의 미복귀 의혹에 보좌관 개입 사실까지 드러나
장관은 부인하다 거짓말 들통 호위무사들은 진술 누락시켜
특권·반칙의 ‘엄마 찬스’라면 사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독립적인 수사팀이 소설인지, 논픽션인지 진실 규명해야

이 소설은 독자들의 관심권 밖이었다가 단숨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소설의 초반부 내용이 다소 지루했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흥미진진한 전개와 다양한 복선 등이 눈길을 확 끌었기 때문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폭발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직 법무부 장관과 그 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의 제목은 ‘황제 휴가’.

주인공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추미애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출신의 5선 의원으로 장관직에 오르자마자 인사권을 무기로 검사들을 갈라치기하는 무공을 발휘하며 검찰총장을 무력화시킨 절대 고수다. 아들 서모씨는 2016년 11월부터 육군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무릎 수술을 위해 2017년 6월 5∼14일 1차 병가, 15∼23일 2차 병가, 24∼27일 개인 연가를 연달아 받아내는 신공을 선보이며 군 장병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몸에 받은 인물. 하지만 내공이 부족했는지 추가 연가의 경우 휴가 연장 승인을 받지 못해 미복귀(탈영) 상태였던 것을 외압으로 무마했다는 의심을 사는 실수를 저지른다. 병무청에 있어야 할 서씨의 병가 기록도 온데간데없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엄마가 집권당 대표였던 시절이다.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같은 달 25일 부대 당직사병이 서씨의 미복귀 사실을 파악하고 전화를 걸어 복귀하라고 했는데 돌연 상급 부대 대위가 당직실로 찾아와 휴가자로 올리라고 지시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난데없이 등장하는 이가 있는데 추 장관의 의원 시절 보좌관이다. 2차 병가 종료 후 병가 연장을 전화로 부대 장교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의원 개인사에 보좌관이 왜 관여했을까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대목이다. 추 장관은 국회에서 보좌관 문의 여부 질문이 나오자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거짓말로 들통 난다. 야당이 보좌관과 통화했다는 부대 장교의 발언 녹취록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결정적 반전 이후 추 장관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긴 침묵을 이어간다. 서씨 변호인 측은 당직병의 말이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하면서도 보좌관 문의에 대해서는 해명조차 못하고 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라는 얘기 아닌가.

이 부분이 소설 전개의 핵심 포인트로 엄마의 개입 여부가 쟁점이 된다. 때문에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비리 의혹을 놓고 ‘아빠 찬스’라고 한 것에 빗대 독자들은 ‘엄마 찬스’가 소설의 부제로 적합하다며 입방아를 찧는다. 특히 청년 독자들은 현실감 넘치는 소설에 자신들의 일인 양 흥분하고 분노한다. 대한민국에서 입시와 병역 문제는 공정을 가늠하는 잣대다. 특히 지도층 인사의 자녀가 연루됐다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교육과 병역의 문제야말로 우리 국민에게 역린의 문제”라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클라이맥스는 추 장관 호위무사들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바로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이다. 지난 1월 고발장 접수 이후 ‘아주 간단한 수사’인데도 9개월째 뭉개고 있다. 6월에야 군 관계자들을 조사할 정도로 진척이 더디다. 문제는 보좌관 전화를 받았다는 군 장교의 진술을 애매하다는 이유로 조서에서 누락시킨 점이다. 당연히 통신기록 등을 확인해봐야 함에도 더 이상 파헤치지 않았다. 은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수사 극비 내용’이 지난 3일 본보의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힐 뻔했다. 추 장관과 입을 맞춘 듯 보좌관 문의 사실 진술이 없다고 했던 서울동부지검은 보도 이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추 장관은 그간 인사권을 휘두르면서 ‘윤석열 사단’을 대거 좌천시키고 충성파들을 요직에 기용하면서 검찰을 길들여 왔다. 정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과거의 적폐 구조로 되돌린 것이다. 서울동부지검도 물갈이 인사를 통해 ‘추미애 사단’으로 완전히 바꾸었다. 그런 서울동부지검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추 장관 애호 소설을 만들려다 예기치 않은 폭로로 ‘권검(權檢) 유착’ 의혹까지 받게 됐다. 이제는 특임검사든 특별검사든 독립적 수사팀을 구성해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추 장관도 직무에서 배제되는 게 마땅하다. 그래야 소설인지, 논픽션인지 그 진실이 오롯이 나타날 것이다. 평창올림픽 통역병 청탁 등 새로운 의혹들도 줄줄이 제기되는 마당이다. 특권과 반칙이 드러난다면 제2의 조국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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