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의사 파업 사태 봉합, 그 이후는

국민일보

[라동철 칼럼] 의사 파업 사태 봉합, 그 이후는

입력 2020-09-09 04:01

추후 의정 협의 과정에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 정책 놓고 갈등 재연될 우려 커
정부·의협 자신들 주장만 고집하면 해결 난망
열린 자세로 지역 의료 격차 해소하고 필수 전공 의사 부족 해결할 해법 모색하길

정부의 의료정책 추진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이 8일 전공의들의 복귀를 끝으로 중단됐다. 하지만 사태가 말끔하게 해결된 게 아니다. 파업이 장기화하는 건 피해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문제 해결을 미루는 방식으로 사태를 봉합했을 뿐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파업 중단 조건으로 5개 항에 합의했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협의한다’는 게 합의의 핵심이다. 문제는 이 조항에 대한 양측의 해석이 다르다는 것이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반면 복지부는 추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협의 과정에서 복지부가 정책 추진 의사를 고수하면 의협이 반발해 파업 사태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당장 현안인 의사 국가고시 거부 의대생들에 대한 구제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의정 대치가 조기 재점화될 수 있다. 복지부는 ‘법과 원칙’ ‘다른 직종 국가고시 수험생들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추가 구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재신청 기회를 두 차례나 줬는데도 모두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국시 무더기 미응시가 몰고올 파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응시 거부자는 올해 국시 대상의 86%(2726명)나 된다. 이들이 모두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내년 수련 병원 인턴과 공중보건의 충원에 큰 차질이 발생한다. 몇 년 후 군의관 충원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량 유급 사태로 의대 교육 시스템에도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대생들이 정부에 명분을 줘야 한다. 정책 철회란 무리한 요구를 접고 학교로 돌아가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의사들도 정부에 구제를 요구하기에 앞서 학생들부터 설득해야 할 것이다.

추진을 일시 중단했지만 필수·공공의료 분야 인력 확보와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2017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2.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다. 10만명당 의대 졸업생도 7.6명으로 OECD 평균(13.1명)의 절반 수준이다. 2029년부터 총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다지만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늘어날 게 확실하다. 그런데도 의대 정원은 2002년 이후 3058명으로 고정돼 있다. 1980~90년대(3200~3600명)보다 적다. 80년대 초 입학한 의사들이 은퇴하게 될 2030년대에 들어서면 매년 몇백명씩 활동 의사 수가 줄어들게 된다. 전문의 양성에는 1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서둘러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 의료 시스템에 위기가 올 수 있다. 지방 의료 인력이 부족하고 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 과목 전문의 충원이 어려운 것도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의사 충원과 의료 격차 해소 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논의해 볼 만한 방안들이고, 여론도 두 정책 추진에 우호적인 편이다. 그런데도 의사와 의대생들은 극구 반대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의사들에게 ‘밥그릇’이 걸린 문제일지 모르지만 잠재적 환자인 국민 대다수에게는 의료 수혜권이 걸려 있다. 의사는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중요한 직업이다. 치열한 경쟁,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쳐야 양성되는 데다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기는 어렵다. 하지만 보상의 크기나 의사 수급 등 핵심 의료정책은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통해 결정돼야 마땅하다. 의사들도 정부에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요구하지만 말고 의료 소비자(환자)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나 공공의대 신설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완화하고 필수 전공 분야 의사를 충원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안이 있다면 그걸 택하면 된다. 정부도 기피 전공과 지역 의사들에게 유리하도록 의료수가 체계를 조정하고 지방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지방 정착을 유도할 인센티브 확대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것은 그런 열린 자세로 해법을 찾아보자는 것 아니겠나.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