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로나로 사회 불안 고조… 美 역사상 ‘총’ 가장 많이 팔렸다

국민일보

[단독] 코로나로 사회 불안 고조… 美 역사상 ‘총’ 가장 많이 팔렸다

국민일보, FBI 총기구매 조회 자료 분석

입력 2020-09-10 04:04
미국인들의 총기 구매가 올해 크게 늘고 있다. 총기 구매를 위한 범죄이력 즉시조회 건수가 지난 8월 이미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기록에 근접했다. 사진은 지난 3월 15일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의 한 총기판매점 앞에 길게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 AP뉴시스

미국의 총기 판매가 올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전례없는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총기 구매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총기 판매가 늘면서 총기 사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격화되는 정치적 갈등에 총기가 사용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국민일보가 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NICS(국가범죄이력 즉시조회시스템) 조회 기록을 분석한 결과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합법적으로 총기 구매를 시도한 건수가 2593만4334건으로 집계됐다. 한 달 평균 324만1791건이다.

1998년 NICS가 도입된 이후 조회 건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지난해로 2836만9750건을 기록했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 9월이나 10월 중 이 기록이 깨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총기 판매는 2016년 정점을 찍은 뒤 하락했다가 다시 증가 추세다.

NICS는 합법적 총기 구매자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총기를 사려는 사람은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 범죄이력을 구매 직전에 검사받아야 한다. NICS는 흉악범죄 전과자, 불법 이민자,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 등이 총기를 보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다.

미국에는 전국 각지에서 팔리는 총기 판매량을 정확히 집계하는 자료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공신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자료가 FBI의 NICS다. 뉴욕타임스(NYT)는 NICS를 토대로 올해 최소 2000만개의 총기가 미국에서 팔렸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DC 인근 버니지아주의 한 총기 판매점 직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총기가 매우 많이 팔린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총기 판매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며 “모든 성인 남녀의 총기 구매가 늘었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데 취약한 여성과 노인들이 코로나19 이후에 많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미국의 기록적인 총기 판매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안이 가장 큰 요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업, 파산, 가정 해체 등이 급증하면서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과 극심한 심리적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늘고, 이들에 의한 강력사건이 급증할 수 있다는 공포가 총기 구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 이후 연이어 발생하는 미국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과 그로 인한 인종차별 항의 시위도 총기 판매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브루킹스연구소는 경찰 예산 중단·축소 주장이 확산되면서 공권력 약화를 우려한 시민들이 스스로 무장하는 추세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NICS의 월별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조회 건수가 월 기준 최고치를 찍었다. 무려 393만건이 넘는다. AP통신은 “6월의 기록적인 조회수는 코로나19 불확실성과 흑인 시위로 인한 혼란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3월도 눈여겨볼 만한 달이다. 지난 2월 280만건을 기록했던 조회수가 3월 374만건으로 급증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코로나19가 미국을 강타해 뉴욕과 같은 대도시들이 ‘외출 금지(stay at home)’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던 시점”이라며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미국인들이 총기를 구매하거나 비축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미국 총기 판매의 새로운 양상은 총기를 처음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미국 사격스포츠협회는 올해 총기 구매자 중 약 40%가 최초 구매자라고 밝혔다. 총기에 익숙지 않은 최초 구매자가 늘면서 사격이나 보관 과정에서 안전사고 우려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총기규제단체에서 일하는 데이비드 칩맨은 AP통신에 “총기 판매 급증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면서 “전례없는 총기 판매량 증가는 향후 몇 달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별 자료를 보면 총기 구매 건수가 인구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됐다. 지난 8월까지 미국에서 총기 구입을 위한 범죄이력 조회가 가장 많이 이뤄진 주는 일리노이로 517만9673건에 달한다. 일리노이주 인구는 1265만명으로 미국에서 6번째다. 일리노이주의 높은 총기 구매 비율은 강력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시카고를 끼고 있다는 점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켄터키주는 더욱 극명한 사례다. 켄터키주 인구는 450만명으로 미국 전체 26위지만 올해 총기 구입 조회 이력은 232만8237건으로 2위다. 켄터키주의 총기 소유 비율이 높은 것은 허술한 규제 조치 때문이다. 켄터키주에선 자동소총 구입에 나이 제한이 없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사회적 불안정성, 흑인 사망 항의 시위, 대선 등 화약고가 사방에 널려 있다. 언제, 어디에서 방아쇠가 당겨질지 모를 노릇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해 확대 시행될 우편투표 제도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벌써부터 대선 불복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던 지난 5월 29일에는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는 트위터 글을 올려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 대선 결과를 놓고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경우 총격전을 비롯한 엄청난 소요사태가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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