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6피트

국민일보

[가리사니] 6피트

임세정 국제부 기자

입력 2020-09-14 04:06

올 초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 기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뒤적거리다 아무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한 영화의 제목은 ‘파이브 피트(Five Feet Apart)’였다. 낭포성 섬유증이란 선천성 질병을 앓고 있는 청춘남녀의 풋풋하고 슬픈 로맨스다. 병원에서 지내는 두 사람은 서로 6피트 이내로 접근해선 안 된다. 상호 간 세균 감염이 잘 일어나는 병의 특성 탓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안전거리를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급기야 서로 간의 안전거리를 5피트로 줄인다. ‘1피트 정도는 괜찮겠지.’ 커플은 안전거리를 마음대로 줄인 것도 모자라 한밤중 몰래 병원 밖 데이트를 감행한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다. 뛰어놀던 빙판이 깨지면서 여자가 물에 빠진 것이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여자를 물 밖으로 끌어내지만 여자는 숨을 쉬지 않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남자는 인공호흡을 한다.

국내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기 2주 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이 지켜야 했던 안전거리 6피트(약 1.8m)는 팬데믹 이후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준으로 권고하고 있는 딱 그만큼이다. 거리두기를 생각하면 가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날 그 많은 기내 상영물 중 왜 하필 그런 제목에 그런 내용의 영화를 보게 된 건지. 거리두기는 누군가에겐 본능처럼 돼 버렸다. 어느 날 집 베란다 밖을 내다보다가 네댓 살쯤 돼 보이는 꼬마 둘이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는지 마스크를 쓴 채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서로를 향해 뛰어와 손을 맞잡으려던 순간,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외쳤다. “아, 코로나!”

거리두기는 많은 이들을 생계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거리두기를 강화하면 감염이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소상공인들이 벼랑 끝에 섰다. 거리두기가 느슨해지면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 비극적인 도돌이표를 없애기 위해선 극단적인 거리두기를 피할 자발적인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적어도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자발적 거리두기에는 연대와 휴머니즘이 필요하다. 이 연대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절박한 연대다. 하지만 슬프게도 미지의 바이러스를 맞닥뜨린 인간에게서 다양한 이기(利己)와 자만(自慢)을 본다. 갖가지 이유로 다양한 곳에서 방역수칙이 무시된다.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가족과 사회를 감염 위험에 빠뜨린다. ‘나 하나쯤 괜찮겠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우리는 또 누군가의 이기심을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혹시 영화 ‘파이브 피트’를 볼 계획이라면 여기부턴 읽지 않는 게 좋겠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오자면, 위기에 처한 커플은 구급차에 실려 무사히 병원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남자는 더 이상 서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떠난다. 서로를 지키기 위해 여자도 ‘물리적 이별’을 받아들인다. 시간을 허비하기에 인생은 짧으니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체온을 나누라는 여주인공의 유튜브 메시지로 영화는 끝난다. 식상할 수도 있는 이 대사가, 이제는 식상하지가 않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과학 매거진 ‘언다크’엔 최근 본능적인 거리두기로 질병을 통제하는 곤충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를 개미집에 넣었더니 개미의 사회적 행동이 달라졌다. 감염된 개미는 건강한 개미들과 떨어진 곳에 머물렀다. 또 극히 일부의 개미들만 여왕개미나 어린 개미와 접촉해 이들을 감염으로부터 지키기까지 했다. 과학자들은 “수백만년 동안 병원균 때문에 멸망하는 곤충 집단이 극히 드물었다는 사실은 이 같은 메커니즘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등장하는 인류 멸망 시나리오는 심심찮게 등장해 왔다. 너무 늦지 않았을 때 거리를 둬서 나쁠 건 없어 보인다. 서로를 위한 휴머니즘이 어렵다면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을 깨워서라도.

임세정 국제부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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