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그 후… 삶도 캠퍼스도 모두 황폐화됐다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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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그 후… 삶도 캠퍼스도 모두 황폐화됐다 [이슈&탐사]

[정해진 미래, 대학 폐교의 현장] ④ 교직원도 상인도 ‘벼랑끝’

입력 2020-09-14 04:05
한국에서 대학 폐교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고 있어 사라지는 대학은 앞으로 더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쟁력이 부족한 대학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실한 대학도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터입니다. 연쇄적인 대학 폐교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대학이 폐교되는 현장을 살펴보고 5회 기획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네 번째 기사에서는 2년 전 문을 닫은 서남대의 현재 모습과 폐교 대학 교수·교직원의 삶을 전합니다.

주용기 전 서남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자신이 강의했던 서남대 남원캠퍼스 봉사관 합동강의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서남대는 이홍하 전 이사장의 비리로 2018년 2월 폐교됐다. 남원=윤성호 기자

‘미래를 여는 젊은 대학 서남대학교’.

정문 앞 쉼터의 초록색 반투명 지붕 아래 빛바랜 슬로건 흔적이 있다. 슬로건이 무색하게 서남대 남원캠퍼스는 폐교 대학이라는 과거로 남았다. 갈라진 아스팔트 틈새로 잡초가 성인 허벅지 위로 솟아 있었다. 주용기 전 서남대 교수가 “친환경이네! 친환경”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주 교수는 1997년 서남대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이 문을 닫기 전 폐교를 막기 위해 국회와 교육부를 쫓아다녔다. 서남대가 2018년 2월 폐교된 뒤에는 폐교 대학 교수들이 주축이 된 사회적협동조합 한국교수발전연구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25일 서남대 남원캠퍼스에서 주 교수와 동행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육자의 길 걷고 싶었어요”

2년여 만에 학교를 찾은 주 교수는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이젠 감정이 좀 메말라서 ‘잘 정리됐다’ 하는 느낌도 들긴 하는데…. 아무래도 아쉽죠. 교육자로서의 길을 걷고 싶었는데 그 길이 끊겼으니까.”

서남대는 2018년 2월 28일 폐교했다. 1991년 3월 문을 연 지 27년 만이었다. 이홍하 전 이사장의 비리가 누적된 것이 핵심 이유다. 이 전 이사장은 교비 횡령 혐의로 2007년 구속 기소됐지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2012년에는 교비 1000억여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9년, 벌금 90억원이 확정됐다. 서남대는 2011년부터 5년 연속 부실 대학으로 지정됐다.

주용기 전 서남대 교수가 지난달 25일 전북 남원 서남대학교 캠퍼스에서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다. 서남대는 2018년 2월 28일 폐교됐다. 남원=윤성호 기자

주 교수는 “문제 있기 전에는 학생이 1만명 정도 있었어요. 축제 때는 상당히 붐볐으니까”라고 말했다. 서남대 운동장은 약 190×180m 넓이에 축구장 2개, 농구코트 3개, 테니스코트 1개가 있다. 운동장에는 학생 대신 가느다란 갈색 식물만 빽빽히 사람 키만큼 솟아 있었다. 주 교수는 운동장 옆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청나게 자랐네. 이사장 이거라도 팔려 할 텐데 서남대법 때문에 속 쓰릴 거예요.”

일명 ‘서남대법’(사립학교법 개정안)은 학교법인이나 사립학교 설립자·경영자가 비리를 저지르고 횡령액을 보전하지 않으면 잔여 재산을 다른 법인에 귀속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서남대 폐교 사태를 계기로 2018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학교법인 이사장이 횡령한 돈을 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만 폐교될 경우 남은 재산이 다시 비리 사학으로 흘러들어갈 수 없도록 막은 것이다. 하지만 서남대법에는 폐교로 직장을 잃은 교직원을 구제하는 방안은 없다. 주 교수는 “말이 서남대법이지 (잔여 재산을) 국고로 귀속하고 땡인 거예요. 최소한 교직원 보호책이나 혜택을 줄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하나도 없잖아요. 앞으로 어느 학교가 폐교돼도 똑같은 상황이에요”라고 목소리 높였다. 현행 교육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 임용령에서는 사립학교 폐교로 퇴직하는 교원을 특별채용 대상으로 규정하지만 초·중등 교원에게만 해당된다.

주 교수는 2018년 말 전 서남대 교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조사했다. 연락이 닿은 62명 중 전공을 유지하며 다른 대학에 재직하던 교수는 5명뿐이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그것도(5명) 정규직이 아니고 일종의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어요. 폐교 교수들은 누가 물어봤을 때 선뜻 얘기할 수 없는 거죠.”


서남대는 최근에야 체불된 교직원 임금을 청산했다. 임금 체불 약 4년 반, 폐교한 지 2년 반이나 지나서였다. “그냥 덤덤했어요. 이미 탈진한 상태였으니까. 다만 한 가지 위로는 ‘아 이제 빚을 정리했다’ 이거죠. 돈 갚으라는 전화 안 받으니까 편하죠.”

그가 캠퍼스 건물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적어도 수십번, 수백번 접했던 건물이에요. 내가 서남대 교수였다는 생각은 쉽게 안 버려지죠.” 봉사관은 간호학과, 보건·사회복지 계열 학과가 쓰던 건물이다. 1층 바닥은 최근 장마로 들어온 빗물이 덜 빠져 신발 깔창 위까지 적셨다. 곰팡이가 천장에서 지분을 넓혀가며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주 교수는 “여기가 마지막까지 강의를 해서 덜 흉측해요”라고 했다.

그는 봉사관 1층 110호 합동강의실에서 교양 강의를 했다. 책상 곳곳에 빗물과 먼지로 눅눅한 책과 시험지가 놓여 있었다. 옛 교단에 선 주 교수는 “갑갑하죠. 하아, 갑갑해. 지금도 이사장한테 ‘도대체 왜 그랬어요’라고 묻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 당국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 폐교는 대한민국 교육의 치욕이기도 해요. 교육부가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거예요. 서남대도 설립자 비리가 처음이 아닌데 계속 내버려뒀잖아요.”

스트레스로 실명… 무기력한 삶

2013년 폐교된 경북외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던 A교수(59)는 취업 시장을 전전하고 있다. 폐교 직후 대구대와 영남대에 시간강사로 나갔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다. 대학 평가에 국제화 지수가 중요해지면서 학교는 A교수 대신 외국인 강사를 고용했다. 그는 교직을 단념하고 재취업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가족의 생계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아내가 이어갔다. 둘째 자녀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A교수는 “등록금을 줄 수 있었으면 어떻게든 가라고 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내 죄가 커요”라고 했다. 그는 2년 전 만성신부전 수술을 받았다. 가장 역할을 못했다는 죄의식과 스트레스 탓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교수와 직원들은 사회의 잉여인력으로 전락한다. 무능한 폐교 대학 출신이라는 꼬리표까지 붙는다. 비리나 횡령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폐교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다. 교육부는 폐교대 출신 구성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희 전 성화대 교수는 2017년 폐교대학 교수 29명을 추적 조사했다. 이 가운데 27명이 우울증 등 병을 앓고 있다. 9명은 ‘무직’이라고 응답했다. 어린이집 차량 운전이나 탁송 업무, 농사일로 전직한 이들도 있었다. 응답자 중 B씨는 “폐교 후 생활비가 부족해 사학연금을 전액 수령했다. 지금은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월 회비 낼 돈이 없어 동창 모임도 못 나간다”고 토로했다. C씨는 폐교 이후 스트레스로 잇몸이 망가지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 그는 “갖고 있던 집을 팔고 더 작은 집에 세 들어 산다. 가족까지 사회의 낙오자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폐교된 대학의 교수 34명은 사회적협동조합 한국교수발전연구원을 만들었다. 이덕재 원장은 자신들에게 폐교 대학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혔다고 했다. 그는 “성화대 폐교 이후 젊은 전직 교수 10여명이 인근 대학의 임용 지원했는데 한 명도 서류를 통과하지 못했어요”라며 “고급 인력들이 사장되고 있어요”라고 지적했다.

교직원들도 갈 곳이 없긴 마찬가지다. 안모(52)씨는 1995년 한중대의 전신인 동해전문대에 입사해 교무 담당 업무를 했다. 밀린 월급을 아직 받지 못했고 갚아야 할 대출금만 남았다. 안씨는 “재취업이 어려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사립대학 교직원들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의 적용을 받지만 고용보험법의 대상자는 아니어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실업자의 전직을 지원하는 고용노동부의 직업능력개발사업에서도 배제된다.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은 사학연금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액수가 적고 폐교 과정에서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아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폐교 대학 학생들은 모교에 큰 애정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부실 대학임을 처음부터 알고 점수에 맞춰 진학한데다 학교가 어려워지면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기 때문이다. 서남대 의대에 재학했던 김모(26)씨는 폐교 후 원광대에 편입했다. 그는 “서남대는 임상 교육이 어려웠고 전문성을 갖춘 교수·연구 인력도 거의 없었어요. 대학을 옮기니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좋아요”라고 말했다.

주변 가게 78곳 문 닫아

“이 동네에만 당구장이 9개 있었는데 믿어져요?” 김용태(60)씨는 말했다. 그는 아내 장모(55)씨와 1996년 서남대 후문에 터를 잡고 중국음식점 ‘중국성’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남대 인근에서 영업 중인 유일한 곳이다. 당구장 외에도 김치찌개집, 원룸텔, 만화방, 슈퍼, 복사집, 카페가 문을 닫았다. 전라북도에 따르면 폐교 직후인 2018년 3월 주변 상가 78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 8월 25일 전북 남원 서남대학교 후문 주변 상가. 2018년 2월 28일 서남대가 폐교한 뒤 인근 상점들은 한곳을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 남원=윤성호 기자

한때 주방장, 배달원, 설거지 담당 직원까지 고용했다. 지금은 부부뿐이다. 손님도 없다. 김씨는 “배달도 없어. 그냥 문만 열어놓고 있다고 보면 돼요”라고 말했다.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도 팔리지 않아 버티는 중이다.

부부는 폐교를 막기 위해 2년여간 시위에 동참했다. 김씨는 “그땐 시위만 있으면 쫓아갔지. 서울(국회)에도 가고, 세종(교육부)에도 가고”라고 회상했다. 장씨는 “우린 여기가 삶의 터전인데. 몇 년을 눈만 뜨면 (폐교 관련 기사) 뭐 없나 봤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를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거 하나 바라봐요”라고 말했다.

서남대 폐교의 여파는 남원시 상권에도 미쳤다. 남원시 도통동에서 17년 전 호프집을 열었다는 홍모(46)씨는 “완전 허허벌판일 때부터 했던 사람이라 알죠”라고 말했다. 145㎡(44평) 호프집엔 손님이 가득 차 문밖에 긴 줄이 늘어설 때도 있었다. “대학생들, 젊은층이 많이 왔으니까요. 지금은 너무 한가해요. 다른 분들도 매출 반토막났대요.”

인근에서 무한리필 고깃집을 운영 중인 윤모(43)씨도 “다들 타격을 입었죠. 대학 하나 없어지는 건 그 지역 상권 전체가 다 흔들리는 거거든요”라고 했다.




[정해진 미래, 대학 폐교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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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남원=권중혁 기자, 권기석 김유나 방극렬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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