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7년간 지적장애인 성·노동력 착취… 법원 “무죄”

국민일보

[단독] 17년간 지적장애인 성·노동력 착취… 법원 “무죄”

시기 특정 못해 2018년 4건만 기소… 법조계 “판단 모순 판례와도 배치”

입력 2020-09-14 04:02
대문 앞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농업용 쓰레기들. 윤씨는 농약값 등을 이유로 A씨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DB

전남 곡성에서 17년 동안 지적장애인 A씨(61)의 성과 노동력을 착취한 혐의로 기소된 80대 노인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성적 접촉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A씨의 성적 자유를 제압하는 행위라는 점을 확신치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십여년간 이어진 성·노동력 착취 정황과 지적장애 여성의 상황 등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노재호)는 지난달 21일 ‘곡성 장애 여성 학대 사건’(국민일보 2019년 12월 25일자 1면 참조) 피고인 윤모(81)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는 2018년 7월부터 9월까지 4회에 걸쳐 지적장애 3급인 A씨를 위력으로 성폭행하고 추행한 혐의(장애인 위계 등 간음 및 추행)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지검은 A씨가 그 이전의 성폭행 피해 시기는 특정하지 못함에 따라 2018년에 있었던 사실만 기소했다.

재판부는 윤씨에 의한 성적 접촉이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죄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윤씨가 A씨의 시어머니가 사망한 2001년 이후로 농사를 도와온 만큼 호의에 의한 성적 접촉일 수 있다는 것이다. 노 부장판사는 “A씨는 8년8개월 정도의 사회 연령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A씨가 성관계의 의미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A씨가 거부 의사를 드러내지 않았고 윤씨가 성행위를 요구하면서 폭행과 협박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무죄의 근거로 봤다. 재판부는 “A씨가 ‘부끄럽고 가족들에게 미안해 죽고 싶다’는 말을 일관되게 진술했지만 이는 배우자가 있는 두 사람이 성적 접촉을 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일 수 있다”며 “윤씨와의 성적 행위가 싫었다는 것인지 단정키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A씨가 경찰 조사 당시 ‘성행위에 응하지 않는 경우 죽인다고 했다’는 말과 법정에서 ‘윤씨와 싸우면 이긴다’는 진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다. 노 부장판사는 “수사가 시작된 뒤 윤씨가 음독자살을 시도하며 남긴 유서의 내용으로 볼 때 A씨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는 뜻을 밝혀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이해했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지적장애인의 적극적 저항행위가 없더라도 항거불능 상태로 보는 앞선 판례와 배치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5세 정도 사회연령을 가진 장애 여성은 적극적 저항행위를 할 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정민 변호사는 “A씨가 윤씨에게 오랫동안 경제적 상황을 의존한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단순 호감으로 성적 요구에 응했다는 모순된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4일 광주고법에 항소했다.

이와 별개로 2018년 A씨를 구조했던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A씨가 윤씨의 농사일을 한 것은 품앗이’라는 노동 당국과 검찰의 결정에 반발해 재항고했다. 기관은 재항고 이유보충서를 통해 “지적장애가 있는 A씨가 윤씨와 대등하게 품앗이했다는 판단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