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틈새 감사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틈새 감사

입력 2020-09-1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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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다시 누리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면 ‘틈새 감사’의 제목들이 많다. 답답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마스크 사이로 파고드는 가을바람에 감사하고, 혼자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났을 때 잠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고, 민낯의 어색함을 합법적으로 감출 수 있는 마스크가 때론 고맙고, 매일 저녁 마스크 없이 편안하게 만나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집과 가족이 있어 감사하다.

이번 주부터 제한적인 대면 수업이 우리 학교에서 진행된다. 상대적으로 통제가 쉬운 작은 대학이지만, 그래도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눈을 맞추며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는 기대, 인터넷 환경과 화상 수업 프로그램 사용법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서로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대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기대, 힘들게 지나온 지난봄과 여름 동안의 다사다난했던 일들에 대해 서로 털어놓으며 ‘그래도 만나니 좋다’고 미소짓는 만남이 기대된다.

반면 혹시라도 감염과 전염 위험은 없을까 하는 걱정, 새로운 학교 환경과 생활에 잘 적응할지에 대한 걱정, 식사와 쉬는 시간 사용에 대한 걱정, 무엇보다도 익숙해져 버린 비대면의 편리함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영원히 비대면 세상에서 머물 수는 없으며 앞으로 상당 기간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직면해야만 한다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비록 제한적이더라도, 주어지는 대면의 순간들이 소중하다.

대면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많은 이들이 있다. 희망의 끝자락을 붙잡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상공인들은 손님들과 만날 날을 기다리고, 텅 빈 예배당에서 빈자리를 바라보며 설교하는 목회자들은 감사의 찬양을 함께 부르며 예배하는 날을 기다리고, 아직도 어색한 화상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은 학생들과 만남을 기다리고, 전염병으로 국경이 막혀 오가지도 못하고 떨어져 있어야 하는 연인과 가족들은 간절히 재회의 순간을 기다린다.

얼마 전 신천지를 탈퇴한 박수진씨 이야기가 울림으로 남는다. 신천지를 떠나려는 청년들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를 떠난 후 지난 과거를 잊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탈퇴로 인한 귀찮은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도, 연락처를 바꾸지 않은 배려의 마음이 사려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씨의 소망대로 신천지를 탈퇴한 청년들과 그녀가 기쁘게 다시 만날 대면의 날이 기다려진다.

하지만 만나서는 안 될 사람도 있다. 신천지 이만희 교주를 비롯한 이단들과는 반드시 ‘영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최근 공개된 이씨의 옥중편지에 따르면 그는 신천지 신도들과 대면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이 교주는 편지에서 “지금의 일은 바람같이 다 지나갈 것”이라고 신도들을 다독이면서, 자신은 “하늘에서나 세상에서 죄짓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라며 혐의를 왜곡하고, “온 세상의 마귀가 떠날 때가 되어서 이 같은 일이 있는 것”이라고 잘못을 합리화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나라에서 위장 포교로 접근해 ‘종교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헌법 20조), 잘못된 정보로 방역을 방해해 국민의 건강권을 위태롭게 하고(헌법 35조), 우리의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세뇌해 가족생활(헌법 36조)을 파괴한 이 교주가 신천지 신도들이나 탈퇴자들에게 다시 접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신천지 탈퇴자들과 피해 가족들이 힘든 코로나 세상 속에서도 ‘틈새 감사’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탁지일(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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