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조롱박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조롱박

오병훈 수필가

입력 2020-09-21 04:06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커다란 느티나무 고사목에 조롱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덩굴 끝에 남은 몇 장의 초록 잎사귀.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과일처럼 매달려 있는 조롱박. 자연이 키운 열매 중에서 박만큼 쓰임새 많은 것이 또 있을까.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박은 함지박을 대신할 수 있고, 들에서 그릇으로 쓸 수 있는 작은 박도 있다. 또 자루가 긴 조롱박과 아래가 크고 갑자기 좁아졌다가 다시 볼록해진 표주박. 이렇게 다양한 크기의 박을 심고 가을에 수확해 그릇으로 요긴하게 썼다. 곡식이나 물도 바가지로 펐으며 복도 바가지로 담았다고 하지 않던가.

박은 나물로도 했던 과채. 하지 이전에 일찍 달린 박은 가을에 익어 바가지가 된다. 그보다 늦은 것은 충실하게 익지 않아서 딱딱한 바가지로 쓸 수 없다. 단단하게 여문 박은 손톱으로 찌르면 들어가지 않는다. 덜 익은 박을 따 반으로 갈라 씨를 파내고 껍질을 벗겨 말리면 겨울에 먹는 박고지. 박잎을 밀가루 반죽에 적셔 전을 부쳐 먹으면 호박잎보다 부드럽다.

어릴 때 어머니는 자루가 긴 조롱박을 간장독에 띄우고 다른 그릇은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다. 금속제나 물이 묻은 그릇으로 간장을 뜨면 맛이 변한다며 반드시 조롱박이어야 했다. 그래서 간장독에 들어 있는 쪽박은 몇 해를 지나는 동안 갈색으로 물들게 마련. 해마다 박을 심었으나 간장독의 바가지는 바꾸지 않았다. 날마다 항아리를 닦아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했고 장독대 옆에는 빨간 맨드라미를 심었다. 집집마다 박을 심고 가꾸었으나 이제는 옛일이 되고 말았다. 스테인리스, 플라스틱제 그릇이 나오면서 바가지는 그릇의 기능을 잃었다. 모내기는 이앙기가, 벼베기는 트랙터가 그 일을 맡으면서 품앗이도 사라졌다. 들에서 장정들이 둘러앉아 바가지에 밥을 비벼 먹었던 시절도 오래되었다. 세월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우리의 민속문화도 하나씩 사라져갔다. 옛 추억을 위해서라도 조롱박을 심었으면.

오병훈 수필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