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논의의 회귀가 두려운 이유

국민일보

[가리사니] 논의의 회귀가 두려운 이유

전슬기 경제부 기자

입력 2020-09-21 04:05

사과 파이가 있다. 1조각씩 동일하게 20명이 나눠 먹을 수 있다. 아니면 더 배고픈 사람 10명 또는 5명이 2~4조각을 먹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법이 더 효율적인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사과 파이 자체가 작을 수 있고, 유독 더 배가 고픈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2차 긴급재난지원금이 시끄럽다. 재난지원금이 사과 파이라면 1차는 모든 국민이 최대 100만원이라는 똑같은 조각을 받았다. 2차는 더 배고픈 사람만 최대 200만원의 파이 조각을 받는다.

정부가 1차를 전 국민에게 지급한 건 경기 부양과 신속성 때문이다. 저소득층은 소득 하락을 보완하고, 중산층 이상은 소비에 나서서 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일부 계층을 빨리 선별할 시스템도 전무했다. 1차 보편 지급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2차 이후는 다르다. 이전 경험을 분석해 효과적인 방안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1차는 저소득층 소득 보완 효과가 있었다. 올해 2분기(4~6월) 소득 상·하위 20%의 격차는 8.42배인데, 정부 지원금으로 4.23배까지 좁혀졌다. 그러나 단순 액수로 보면 조금 다르다. 공적이전소득(정부 지원금)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소득 하위 40%(1~2분위) 대비 소득 상위 40%(4~5분위)가 더 컸다. 지원금을 가구원 수에 따라 차등 지급하면서 가족이 많은 고소득층이 유리했다. 고소득층이 지원금을 더 많이 받았지만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 양극화 축소가 가능했던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은 소비를 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보건 위기다. 돈이 없어 소비를 안 하는 것보다 감염 우려로 대면 서비스를 피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2분기 고소득층(4~5분위)의 평균 소비성향은 57.1~67.8%인 반면 저소득층(1~2분위)의 평균 소비성향은 78.0~100.7%다. 하버드대 라지 체티 교수 연구팀은 최근 고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저소득층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고소득층 지출 감소가 위기 원인 중 하나라는 얘기다. 결국 중산층 이상은 현재 지원금을 받아도 소비를 늘리지 않으며 ‘소비→경기부양’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코로나19에는 선별 지급이 더 맞을 수 있다. 더 배고픈 소상공인, 저소득층에게 더 두툼한 사과 파이 조각을 몰아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선별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하지만 1차 지급 이후 선별 능력은 전혀 발달하지 못했다. 2차 재난지원금은 현장의 혼란만 키우고 있다. 다시 보편 지급으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거세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다 주자’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하다. 중산층 이상은 사과 파이를 안 먹고 버리는데, 취약계층은 계속 허기를 달랠 수 없는 작은 파이 조각만 받을 수 있다.

1차 재난지원금 효과를 분석하고 선별 시나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시간이 걸린다면 단기적으로 기존 정책 확대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2차 재난지원금도 기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현금 수당보다 사실상 민생 경기 대책에 가깝다. 1차 지급 이후 ‘보편 수당’ 느낌이 강해진 재난지원금 이름이 덮어지면서 형평성 논란을 더 키운 측면도 있다.

장기적으로 사과 파이 크기 자체를 키우는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보편과 선별 논쟁의 시작점에는 한정된 재원이 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돈을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실험 과제를 던졌다.

정부와 정치권은 누굴 줘도 ‘내가 더 배고프다’는 현재 상황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다 주고 말자’는 포기 상태는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교과서에도 없는 초유의 위기에 가장 두려운 일은 정책이 발전하지 못하고 회귀하는 것이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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