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베스트셀러 진열대 앞에서

국민일보

[뉴스룸에서] 베스트셀러 진열대 앞에서

강주화 산업부 차장

입력 2020-09-21 04:03

간혹 서점에 간다. 여유 있는 날은 분야별로 어떤 책이 새로 나오고 또 많이 팔리는지 돌아본다. 그렇지 않은 날은 종합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놓인 책 제목만 쭉 훑어본다. 책으로 읽어야 할 정도로 간절한 동시대인의 관심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여기 진열된 책 제목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돈의 속성’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엄마, 주식 사주세요’…. 상위 10권 중 7권이 돈 불리는 방법을 조언하는 경제 실용서였다. 그 방법은 주로 주식투자였다. 요지는 간단했다. “단순 저축은 금융문맹이 하는 짓이다. 돈을 늘리려면 지금부터 주식에 투자해라.” 저금리로 유동성은 풍부하고 코로나19로 투자처도 많지 않다. 여기에 인플루언서들의 적극적인 조언까지 더해 주식투자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주린이’(주식+어린이)를 포함한 ‘개미’들이 주식시장에 떼를 지어 다니고 있다. 지난 7월 상장된 SK바이오팜은 ‘따상상상’(공모가 2배+3거래일 상한가)을 기록했다. 최근 카카오게임즈는 역시 ‘따상상’을 기록했고 시총 순위는 5위로 한 주를 마감했다. 이제 유망한 기업의 주식 상장 소식이 들릴 때마다 ‘따상상상’이란 외침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일각에선 부동산 투자 막차를 놓친 2030세대가 생존을 위해 주식투자에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실제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 2030세대의 재무 목표 1위는 ‘주택 구입을 위한 재원 마련’(31%)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주택을 얻을 기회다. 그런데 주식투자를 위한 조언과 안내만 넘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한 저자는 베스트셀러인 자기 책에서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고 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생계 위협 속에서 행복할 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돈을 모으려면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 역시 똑같이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주식투자는 자산을 늘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단, 성공적으로 투자 종목을 골랐을 때다. 여기에다 이 성공이 실패보다 높은 횟수로 반복될 때 자산을 늘릴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원금을 날릴 수 있다. 주변에도 주식투자를 했다가 목돈을 날린 경우가 허다하다. 또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빚을 내 투자했다가 다시 날리는 이도 적지 않다.

자칭 투자 전문가들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주식투자를 부추기는 것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이런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비슷한 내용의 유튜브 채널에 사람들이 몰리는 상황이 걱정스럽다. 베스트셀러의 챕터를 들여다보니 문득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1885)가 떠올랐다. 농부 파홈은 거대한 땅의 촌장과 땅 매매 계약을 한다. 1000루블만 내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걸어서 돌아온 땅을 모두 가진다는 조건이었다. 파홈은 정오를 넘겨서도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전진한다. 파홈은 해가 떨어지기 직전 간신히 촌장 앞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촌장이 파홈을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톨스토이가 탐욕의 전쟁터라는 주식시장의 일면을 다룬다면 어떤 전개가 될까. 촌장은 “주식이 최고 투자처”라며 개미에게 손짓하는 투자 전문가다. 파홈은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 위해 연일 단타 투자를 강행하는 개미다. 개미는 ‘영끌’해 모은 돈을 다 잃을 수 있다. 톨스토이가 이 얘기에 붙일 제목은 ‘시장은 왜 사람에게 좌절을 안기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씁쓸히 서점을 나섰다.

강주화 산업부 차장 rula@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