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긴즈버그 대법관의 마지막 소원

국민일보

[한마당] 긴즈버그 대법관의 마지막 소원

배병우 논설위원

입력 2020-09-21 04:04

18일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 대법관은 진보의 대모(代母), 페미니즘의 아이콘(우상) 등으로 불렸다. 그렇다고 열정적인 말이나 카리스마적 행동으로 진보적 가치를 주창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키 155㎝의 왜소한 체구에 내성적이었던 긴즈버그 법관의 무기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태도와 적확한 언어였다.

긴즈버그가 여성과 소수자 등 약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준열히 반대한 데는 개인적 체험도 작용했다. 그는 세계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뉴욕에서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지금은 상상이 잘 안 되지만 1950년대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 500명 중 여학생은 단 9명이었다. 당시 총장은 입학한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이 갈 수 있는 자리를 빼앗아 굳이 로스쿨에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긴즈버그는 하버드 로스쿨을 최우등으로 졸업했지만 법률회사에 취업하지 못했다. 그는 “뉴욕의 로펌 중 나를 고용하려고 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나는 세 가지 이유로 탈락이었다. 유대인이고 여자인 데다 엄마였다”고 회고했다. 1963년 마침내 대학교수가 됐을 때도 동료 남성 교수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아야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긴즈버그를 연방 대법관에 지명했다. 미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 대법관이자 첫 유대인 여성 대법관이었다. 오늘날 미국 하면 양성평등과 공정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된 데는 27년간 긴즈버그가 남긴 명판결의 역할이 크다. 페미니스트, 진보 판사로 긴즈버그를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법과 제도에 여성과 남성 등 성별 기준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는 점에서 인권주의자, 인도주의자가 더 들어맞는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사망하기 수일 전 “나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교체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사기꾼(faker)”이라고까지 부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을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한 것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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