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국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국민일보

[경제시평] 국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신자은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입력 2020-09-22 04:03

기획재정부가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 결과를 발표했다. 급변하는 대내외적 경제 여건과 불확실성 시대 그리고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재정지출의 필요가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 국가 재정의 향방과 대응 방안에 대한 정부의 의중에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전망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충격적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2060년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81.1%로, 국민 1인당 3000만원 선을 족히 넘을 거란다. 국가채무비율 40% 선(심리적 마지노선)의 근거가 뭐냐는 논란이 벌어진 게 얼마 전이었는데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나랏빚 규모가 던져졌다. 재정관리 대책에 대한 요구가 드높아야 되는데 4차 추가경정예산을 통신비에 쓸 것인가, 독감백신에 쓸 것인가의 언쟁만 가득하니 우려스럽다.

어느 수준까지 국가채무가 늘어도 괜찮은가라는 우문으로 본질을 피해가선 안 된다. 국가도 빚이 많으면 망할 수 있다. 옆집은 더 빚이 많으니 더 빚을 늘려도 괜찮다는 건 가당치 않은 논리다. 알뜰하게 살림해도 고령화와 저성장 때문에 국가 재정은 물론 연금과 사회보험도 기금 고갈 시점이 몇 년 후다. 그리스나 일본의 전철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운운하지 말고 독일이나 유럽연합(EU)같이 엄격한 재정준칙으로 확실한 재정관리체계의 영을 세워야 한다.

국가채무는 엄중히 관리하지 않으면 늘어나는 중년의 체중 같은 속성을 가졌다. 국민과 정부 간, 정권 간, 세대 간의 ‘주인-대리인 문제’와 정보 비대칭 문제가 심각해 정치에 휘둘리고 포퓰리즘에 쉽게 이용당한다. 한 번 시작된 사업은 기재부 마음처럼 쉽게 구조조정되지 않는 관성이 있다. 재정지출 메뉴를 내놓을 때마다 선거용이라고 비판받는 건 대리자로서 당연히 맞아야 할 매다. 재원확보 계획, 재정효과 입증, 재정관리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 신뢰를 얻고 포퓰리즘이 아님을 입증할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

성장률 제고를 통해 국가채무비율을 60% 선에서 관리하겠다고 하지만 한국판 뉴딜은 아직 선언적 단계이고 다른 정책 메뉴들은 국정과제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증세, 연금개혁, 사회보험료 인상은 누적되는 적자재정의 피할 수 없는 종착점인데 에둘러 피해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 전망보다 10년 이른 시점인 2050년에 국가채무비율이 80%를 넘을 거라고 전망했었다. 나라살림을 맡은 책임자로서 다 계획이 있겠지만서도 세계 최저기록을 경신 중인 출산율, 축축 처지는 성장률, 코로나 충격까지 끌어안고 어떻게 2년 전보다 더 낙관적인 전망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는지, 알면서도 못해온 일을 이제는 정말 해낼 각오인지 의문과 기대가 교차한다.

작년 실질 GDP 성장률이 2%, 올해는 역성장, 코로나 충격에서 회복하려면 5년은 걸릴 거라는데 앞으로 10년 동안 평균 실질 GDP 성장률을 3%로 만들어서 성장 대응 시나리오를 실현시키겠다고 한다. 이대로만 되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 곧 다가오는 대선의 거친 파고를 맞서 싸워야 하는 기재부의 기백은 높이 살지언정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건대 승리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 기대어 불꽃같은 눈으로 국가 재정을 수호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이 게으름은 눈덩이같이 불어난 나랏빚으로 어느 순간 우리를, 미래세대를 덮칠 것이다. 국가 재정을 엄중히 관리해 현 세대, 미래 세대 두루 안심하고 든든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정부의 정성이고 위로다. 나라살림을 두고 “나는 신용불량자입니다”라는 청년세대의 국회 연설을 듣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신자은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