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불효자는 ‘옵’니다

국민일보

[김의구 칼럼] 불효자는 ‘옵’니다

입력 2020-09-22 04:01
구수한 사투리로 귀성 자제 호소하는 고향발 캠페인에
복잡한 자식들의 심경

코로나19로 막힌 천륜 이미 숱하고 이북 실향민도 있어
안가는 것도 효도되는 올 추석


중국 우한시는 지난 1월 23일 오전 10시부터 봉쇄됐다. 항공기와 기차 등의 운행이 중단됐고 도로도 막혔다. 중국의 설 명절인 춘제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외부와의 왕래는 물론이고 시 안에서도 이동이 통제됐다. 2월이 되면서 주택단지 내 통행도 제한됐고 식료품은 공동 구매를 통해 배달됐다. 사회주의식 강력한 통제로 우한은 76일간 거대한 감옥처럼 변했다.

우한 봉쇄는 사실 다소 늦었다. 중국 보건 당국이 우한의 수산시장에서 원인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고 보고한 게 지난해 12월 31일이었다. 봉쇄 조치가 취해졌을 당시 우한에 남은 인원은 900만명이었다. 500만명은 명절을 앞두고 이미 중국 내 다른 곳이나 해외로 떠난 상태였다.

지난 설 때만 해도 코로나19는 남의 나라 일 같았는데 이젠 우리가 대유행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도 감염병 기세가 여전해 방역 당국의 고민이 크다. 광복절 연휴를 고비로 수도권이 핫코너가 돼 이곳 인구 집중도가 높은 우리에게 추석 민족 대이동은 비상상황이다. 우한처럼 대처가 늦어지면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정부는 닷새간의 추석 연휴를 최대 고비로 보고 귀성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명절이면 고향에 한데 모여 부모 친지 얼굴을 대하고 조상을 찾는 전통의 뿌리가 깊다. 한가위인데도 고향을 찾지 않으면 불효요, 며느리·사위와 손주를 봬드리지 못하면 실망이 크실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최근 고향마을들에선 부모가 먼저 나서서 자식들 부담을 덜어주자는 캠페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수도권 출향인에게 고향행 자제를 호소하는 서한을 발송했고, 전남도도 도민과 향우에 호소문을 냈다. 전남 보성에서는 ‘고향의 안전을 지키는 아버지, 어머니 일동’ 명의로 “아들, 딸, 며느리야!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안 와도 된당께”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전남 완도는 “얘들아 이번 벌초는 아부지가 한다. 너희는 오지 말고 편히 쉬어라잉”, 제주도 서귀포시는 “삼춘! 이번 벌초 때는 내려오지 맙써!” 등의 문구를 내걸었다. “아범아! 추석에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 “아들아! 명절에 안 와도 된다. 며늘아! 선물은 택배로 부쳐라”라는 당부도 있다. “올해 말고 오래 보자꾸나” “이번 추석은 오지 마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단다”라는 삶의 지혜를 담은 경구도 나붙었다. 정세균 총리를 끌어들여 “이번 추석엔 총리를 파세요. 정 총리가 그러더구나 추석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건 위험하다고…. 힘들게 내려와서 전 부치지 말고 용돈을 두 배로 부쳐다오”라는 재치 있는 글도 등장했다.

구수한 사투리에 자식 걱정이 듬뿍 담긴 익살스러운 글귀들을 대하면 마음은 더 안쓰럽고 짠하다. 충남 청양 거리에 이달 중순부터 등장한 “불효자는 ‘옵’니다”는 압권이다. ‘귀성이 곧 불효’라는 통찰을 압축해, 너털웃음 짓는 눈물 그렁거리는 얼굴과 함께 넣은 이 현수막은 심란한 고향의 부모, 그래서 더 복잡한 자식들의 심금을 울린다.

아버지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온 게 9월 7일이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진행 중이고 전국 신규 확진자 수가 닷새째 100명대를 유지하던 날이었다. “이번 성묘는 고향의 가족들만 가기로 하였다. 서울 삼촌네도 그렇게 연락이 되었다. 崇祖(숭조) 孝(효)보다 건강이 우선이다.” 보름이 되도록 답신을 못 드렸다. 그래도 막상 찾아뵈면 기뻐하실 것임을 알기 때문에 확진자 수가 50명 밑으로 떨어질 때를 마냥 기다리던 참이다.

연휴가 다가오면서 올해는 근력에 도움이 되는 소고기를 보내드리고, 잠잠해지는 가장 빠른 날을 잡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그 죄를 어찌 감당할까 걱정이 커진다. 모진 바이러스가 천륜을 막은 게 이미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노부인이 있었고,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마지막도 지키지 못한 부모도 있었다. 객 없는 장례, 혼사도 부지기수였다. 올 추석에도 요양원 면회가 안 돼 속 끓이는 자식들이 숱하고, 휴전선에 눈물을 뿌릴 실향민들도 있다. 귀성을 조금 미루는 게 트롯 가사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정도는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니 올해엔 멀고 오랠수록 더 사무치는 천륜의 정이 느꺼운 명절을 쇠어볼 수도 있겠다.

논설위원 eg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