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다’ 소금 뿌리던 어르신들과 17년… 이웃 넘어 가족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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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다’ 소금 뿌리던 어르신들과 17년… 이웃 넘어 가족 됐다

농촌목회 한길 화성 호산나교회 이성구 목사

입력 2020-09-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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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화성 호산나교회 목사가 지난 10일 예배당에서 농촌목회의 지향점과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화성=신석현 인턴기자

경기도 화성 비봉면. 차를 타고 각종 공장이 줄지어 선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하나 있다. 마을회관과 비닐하우스 사이로 붉은 벽돌 위에 양철지붕, 우뚝 솟은 첨탑과 십자가가 돋보이는 호산나교회(이성구 목사) 예배당이다.

“지금은 공장에 자리를 내줬지만 전부 논밭이었던 곳들입니다. 성도들이 30년 전 직접 벽돌을 쌓아 이 자리에 예배당을 지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주민들에게나 외지인에게나 엄마 같고 친구 같은 곳이 돼주고 있지요.”

지난 10일 예배당에서 만난 이성구 목사는 낡은 장의자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2000년대 들어 공장들이 세워지기 전까지 비봉면 양노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3개 부락에 20가구 남짓 생활하던 이곳에 1988년 한 여전도사가 어린이 성도 1명과 함께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게 호산나교회의 태동이었다.

이 목사가 호산나교회 목양을 맡은 건 17년 전. 그는 “하나님의 이끄심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회상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교원자격증까지 취득한 이 목사는 인천 지역의 한 중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며 청년복음화에 대한 비전을 꾸려가고 있었다.

1989년 당시 호산나교회 성도들의 얼굴이 담긴 기념패. 호산나교회 제공

“부목사 시절 청년부를 맡고 교구사역도 하면서 매일 2700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로 출근을 했습니다. 800세대 규모의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당시 담임목사님께서 ‘단지 안에 교회를 세우고 수석부목사를 맡아보라’고 제안하셨어요.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호산나교회로부터 청빙 요청이 왔습니다. 신대원 다닐 때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찬양을 부르면서도 동기들끼리 ‘농촌목회는 가시밭길이니 경기도 아래로는 내려가지 말라’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었는데 그 상황을 맞닥뜨리고 보니 머릿속에 딱 한마디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 앞에선 도시 시골 해외 국내가 따로 없다’.”

굳게 마음을 먹고 호산나교회에 부임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청년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고령 성도와 육아 중인 주부 성도들, 마이너스 150만원이라고 적힌 재정장부, 배타적인 동네 분위기 등 목회환경에 ‘플러스’가 돼줄 만한 요인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보 한 장 뽑을 도구가 없어 부임 후 첫 사역이 프린터 장만이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막막한 상황에서 이 목사의 눈을 뜨이게 한 건 유년시절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북 진안 산골에서 손수 지은 흙집 안에 호롱불 하나 켠 채 복음을 전하던 목회자였다. 지역 복음화의 핵심은 ‘관계’였고 이웃을 넘어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이 목사는 그날로 마을의 ‘돌쇠’를 자청했다. 마을회관과 골목길 청소는 물론 어르신 댁에 전등이 고장 날 땐 전기설비사, 보일러가 고장 날 땐 수리공으로 변신했다. 예배당 뒤편엔 중고 소파를 가져다 놓아 오가는 주민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다. 나이 성별 종교를 가리지 않고 이웃의 경조사를 챙겼고 심방이나 전도를 나갈 땐 텃밭에서 직접 기른 고추를 두 손 가득 들었다.

이 목사는 “부임 초기에 목사라고 소개하며 인사할 때 ‘재수 없다’고 소금 뿌리던 어르신은 어느 날부터 손수 커피 타주는 어머니가 됐고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땐 같은 병실에 있던 동네 무당 아주머니가 복음에 귀기울이기도 했다”며 “그때마다 이방인에서 비로소 가족이 됐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호산나교회 성도들이 이웃 어르신을 심방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호산나교회 제공

목회의 마이너스 요인이라 생각했던 환경은 플러스 요인으로 바뀌었다. 인생의 풍파를 경험한 고령의 성도들은 위기의 때에 새벽 기도 제단을 쌓으며 이 목사에게 지혜를 줬고 가정주부들은 유모차를 끌고 나와 전도에 열심을 보였다. 5년 전 토지 분쟁에 휘말려 예배당을 옮겨야 하는 위기에 처했을 땐 가족이 된 주민들이 교회 편에서 응원해주고 성도들은 십시일반 재정을 후원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40여명 남짓의 작은 공동체지만 해외 선교지 10곳을 돕고 있을 정도로 선교에 대한 열정도 크다.

농촌목회 현장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대면예배가 제한되고 교회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줄지 않는 것도 불안요소다. 하지만 이 목사는 “목회 현장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농촌 도시 구분 없이 불안요소로 가득했다. 결국 목회는 ‘Y자 삼거리’가 아니라 ‘T자 삼거리’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자 삼거리는 멀리서도 좌우편 길이 보이지만 T자 삼거리는 다릅니다. 멀리서 볼 땐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그때 뒷걸음질치면 영원히 길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막다른 길로 보이더라도 믿음으로 걸어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좌우로 펼쳐진 길을 보여주십니다.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줘야 합니다. 늘 오고 싶은 공간이 돼줘야 하고 늘 환영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그게 목회자와 성도들이 잃지 말아야 할 가치입니다.”

화성=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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