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성묘에 왜 이렇게 집착할까

국민일보

[청사초롱] 성묘에 왜 이렇게 집착할까

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입력 2020-09-23 04:04 수정 2020-09-23 04:04

성묘와 제사는 유교적 전통 같지만 그렇지 않다. 죽은 사람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원시적 조상숭배 사상의 산물이다. 고인돌을 세우던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신앙이다. 추석 성묘도 마찬가지다. 추석 성묘는 유교 경전에 근거가 없다. 중국에도 없는 풍속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추석 성묘의 기원을 토속신앙에서 찾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가야 사람들이 수로왕릉 옆에 사당을 짓고 1년에 네 차례 제사를 지냈는데, 이 가운데 8월 15일 제사가 추석 성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추석 성묘는 유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한 셈이다.

본디 유교는 무덤을 제례의 공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유교적 관념에서 조상의 영혼은 신주에 있지 무덤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사를 지내려면 집에서 신주를 모시고 지내야지 굳이 무덤을 찾을 이유가 없다. 주자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러한 관념은 더욱 공고해졌다. 주자는 집안에 마련한 조상의 사당인 가묘(家廟)의 제례는 세세하게 규정한 반면 무덤의 제례는 규정하지 않았다. 주자는 무덤에 지내는 제사, 즉 묘제(墓祭)는 1년에 한 번이면 된다고 했다(‘주자가례’). 당시 민간에 널리 퍼진 한식 성묘의 풍습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조선 사람들은 조상 무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설날, 한식, 단오, 추석까지 1년에 네 차례나 묘제를 지냈다. 예법에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풍습이라는 것이 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퇴계는 묘제가 예법에 없다고 분명히 말했고, 율곡도 1년에 네 차례 묘제는 너무 많다고 했다. 성호 이익은 1년에 두 차례면 충분하다고 보았고, 성호의 제자 순암 안정복도 같은 의견이었다. 유학자들은 어떻게든 묘제를 간소화하려고 애썼다.

묘제의 간소화를 위한 노력은 국왕의 성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국왕의 성묘를 능행(陵幸)이라 한다. 능침(陵寢)에 행차한다는 말이다. 국왕의 능행은 민폐다. 한 번 행차에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국왕들은 능행을 자주 하지 않았다. 인조는 재위 26년 동안 아버지 선조의 능에 세 번밖에 가지 않았다. 효종은 10년 동안 두 번, 현종은 15년 동안 세 번이었다. 5년에 한 번꼴이다. 숙종은 재위 47년 동안 아버지 현종의 능에 12번 행차했고, 영조는 52년 동안 15번 행차했다. 3, 4년 간격이다. 아버지 묘소 말고도 갈 곳이 많은 탓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묘소도 가고 증조할아버지 묘소도 가야 하니까. 그래도 전부 합쳐 봐야 1년에 한두 번에 불과했다.

신하들도 명절 성묘는 불가능했다. 관원들이 명절마다 성묘하러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경국대전을 보면 성묘를 위한 휴가는 5년에 한 번뿐이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여러 해 성묘를 못 했으니 제발 휴가 좀 달라는 신하들의 상소문이 가득하다. 국왕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성묘는 쉽지 않았다.

해마다 명절을 앞둔 이맘때는 성묘객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조선시대 사람보다 지극정성이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서도 우리만 유난하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기독교 신자도 예외가 아니다. ‘추도예배’로 형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성묘와 차례에 집착하는 것일까. 퇴계의 발언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퇴계는 말했다. 예법에 없어도 풍습에 따라 성묘하고 차례 지내는 건 좋다. 다만 복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절대 안 된다(퇴계집 ‘수곡암기’). 겉으로는 조상 공경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세태를 넌지시 꼬집은 말이다. 오늘날까지도 유난스러운 성묘와 차례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우리의 내면에 잠재된 기복신앙 탓인지도 모른다.

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