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긴즈버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긴즈버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김남중 국제부장

입력 2020-09-23 04:02 수정 2020-09-23 13:37

작년 3월 15일 미국 각지의 법원 계단에 시민들이 모이더니 푸시업(팔굽혀펴기)을 하기 시작했다. 연방대법원 최고령 판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86세 생일을 축하하는 이벤트였다. 푸시업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대장암 치료를 마친 1999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근력 운동을 상징하는 동작이었다. 타임지는 긴즈버그의 팬들이 보여준 이 푸시업 이벤트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누리는 삶을 가능하게 해준 ‘법의 거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전했다. 또 적어도 2020년 11월 대통령 선거까지는 그가 건강을 유지해 대법관 자리를 지켜달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대선을 46일 앞둔 지난 18일(현지시간) 영영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안에 긴즈버그의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미국의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법관을 지명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거세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밀어붙일 기세다.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긴즈버그의 후임으로 보수 대법관이 임명되면 미국 대법원 구성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재편된다. 긴즈버그가 평생 옹호해온 성 평등, 차별 금지, 시민의 자유, 헌법적 가치 등 진보적인 목소리는 더욱 소수화되고 만다. 당장 의료보험이나 낙태권 등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긴즈버그가 버티는 것은 그래서 중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긴즈버그는 이미 80세가 넘었고, 대장암에 이어 발병한 췌장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이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도 그의 고령을 이유로 퇴진 압박이 있었다. 긴즈버그는 2014년 잡지 뉴리퍼블릭에서 자리를 지킨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작년에 내가 퇴임했어야 한다고 말했던 몇 사람, 특히 학자들에게 내가 물었다. ‘나 말고 대법원에서 봤으면 하는 사람 중에 대통령이 지명해 상원을 통과할 것 같은 사람이 과연 있습니까?’ 이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매일 운동을 하며 버텼다. 암과 합병증이 괴롭혔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다. 그렇게 대법관 자리를 지키면서 보수 우위의 대법원 속에서 끈질기게 반대 의견서를 썼다. 그는 지난해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그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현직 대법관으로 생을 마쳤다.

긴즈버그가 버텨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1993년 그가 대법관이 되면서 9명의 대법관 중 여성이 처음으로 2명이 됐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2006년 은퇴한 뒤에는 긴즈버그가 유일한 여성 대법관이었다. 2009년 소니아 소토마요르, 2010년 엘리나 케이건이 임명되면서 여성 대법관은 3명이 됐다. 긴즈버그는 오랜 세월 남성들의 세계로 여겨졌던 법조계와 공직에서 여성의 자리, 여성의 목소리를 지켜야 했다. 2009년 USA투데이 인터뷰가 그의 생각을 잘 전해준다. “여성은 결정이 이루어지는 모든 장소의 일원이다. 그렇다고 50대 50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남성이 60, 여성이 40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제외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작고 깡마른 87세 할머니, 긴즈버그는 자신의 일을 마치고 안식에 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워싱턴DC 대법원 앞에는 수많은 시민이 모여 감사와 존경을 표현했다. 한 대법원 판사에 대한 이 특별한 경의는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추모 인파 속에는 딸을 데리고 나온 어머니도 많았다고 한다. 긴즈버그는 소녀들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김남중 국제부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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