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코로나 시대의 신앙생활

국민일보

[빛과 소금] 코로나 시대의 신앙생활

입력 2020-09-26 04:0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재확산에 따라 수도권 교회의 대면예배 금지 조치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교회와 성도들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신앙을 걱정해 발을 동동 구른다. 동시에 정부의 방역 조치가 더 유연해지기를 요청하고 있다. 교회 밖에선 이런 교회의 요구들을 비판하지만, 기독교 신앙에서 신자들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가 신앙의 한 요소라는 점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요 며칠 출근하면서 나 나름대로 예배를 드렸다. 찬송가 합창곡을 유튜브로 들으면서 사무치는 마음을 달랬다. 잠시 속으로 기도했는데 근래 들어 가장 강렬하고 간절했던 것 같다. 주기도문이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했는데 울컥해져 더 잇지 못했다.

이날 읽은 성경은 빌립보서 전체였다. 빌립보는 1세기 당시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사도 바울은 AD 50년쯤 그곳에 교회를 세웠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그 교회 신자들에게 쓴 편지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서신을 작성했지만 기쁨으로 충만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빌 4:4~6, 새번역) 코로나 시대를 힘겹게 사는 우리를 향한 말씀으로 다가왔다.

현장 예배가 멈추었다고 신앙이 멈출 수는 없다. 각자 혹은 가족 단위로 가정과 일터에서, 이동하면서 또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신앙생활은 계속돼야 한다. 적어도 개신교에서 신자의 신앙생활은 종교적 제의를 뛰어넘는다. 예배당뿐 아니라 신자들의 삶 전체에서 예배가 이뤄진다.

미국 성공회 사제이자 대학 캠퍼스 사역자로 활동해온 티시 해리스 워런은 저서 ‘오늘이라는 예배’에서 사소한 하루가 어떻게 거룩한 예배가 되는지를 세밀히 기록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침대 정리를 하면서 세례와 예전(liturgy)을 생각했고, 남은 음식을 먹으며 말씀과 성례전을 묵상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친구와 통화하면서 상대방을 축복하는 공동체를 경험했고, 운전 중 교통 체증을 버티면서 서두르지 않는 하나님을 떠올렸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다면 모든 순간은 예배로 변할 수 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라틴어 성경 ‘불가타’ 번역자인 히에로니무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일은 곧 기도”라고 했다. 히에로니무스는 “신앙인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기도”라고 했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기도를 두 배로 하는 것”이란 말을 남겼다. 루터 역시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바빌로니아의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했던 것처럼 매일 아침 두 시간씩 기도했고, 할 일이 많은 날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기도했다고 한다. 루터의 ‘프로테스트’는 기도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를 못 드린다고 속상해할 일이 아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 성경 통독과 성경 필사, 그리고 정직 홀로있기 섬김 기뻐함 등의 훈련을 통해 코로나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루터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흑사병 재앙 속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오, 주님! 당신께서는 가난하고 불쌍한 피조물들을 아십니다. 우리는 심히 연약하여 당신의 거룩한 말씀 앞에서 감사할 줄 모르고, 당신의 뜻을 제 맘대로 구부려가며 삽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지금 우리는 범죄로 인해 지독한 역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만을 징계하시되, 당신의 자비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여 주소서. 탄원을 들어주시는 주님, 당신께 간절히 구하오니, 우리가 당신의 말씀과 뜻을 경청하게 하시고 이 병을 거두어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자비로운 하늘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우리의 대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프로테스탄트의 기도’에서)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