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의학 칼럼] 자기중심적 사고 포기해야 관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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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의학 칼럼] 자기중심적 사고 포기해야 관계 시작

입력 2020-09-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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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장 19절의 말씀이다.

이 말씀으로 자기중심성이 깨져야 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을 살펴보자. 관계성과 자기중심성이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을까. 이런 노래가 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이 노래를 마음속으로 불러 봤다. 소리 내 부르지 않으면 내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알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자기중심성이다.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받았던 감동을 다른 사람도 충분히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자기중심적 사고다. 진리도 마찬가지다. 객관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객관적이지도 않고 모호할 때가 있다.

자기중심성은 착각을 만들어 낸다. 누가 뒤에서 수군거리면 그걸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온통 내 뒷말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별 뜻 없이 웃고 지나갔는데 나를 좋아하는 표시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착각이다.

방송에서 본 일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한 교수가 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여줬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준 뒤 자기 손을 그려보라고 했다. 교수는 그 손을 보고 성격을 맞혀 보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열심히 손을 그렸다. 심리학자는 그걸 본 뒤 성격을 분석한 결과를 보여줬다.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성격을 90% 이상 맞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속임수였다. 심리학자는 학생들의 그림을 보지도 않았다. 똑같은 내용의 성격유형 결과지를 나눠줬을 뿐이었다. 결과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자존심이 강하다. 타고난 머리는 있으나 노력을 게을리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은 이런 내용을 받아들고 모두 자기 성격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이 또한 자기중심적 사고가 만들어 낸 착각이다.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수많은 갈등이 발생한다. 갈등의 원인 역시 자기중심적 사고에 있다. 자기를 기준으로 모든 걸 보니 상대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나를 기준으로 보니 내가 보는 방향이 앞이 되는 것이다. 그 반대편은 뒤가 되고 그걸 기준으로 오른쪽과 왼쪽도 결정된다. 그러나 상대가 보면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앞이지만 반대편 사람에게는 뒤가 된다. 나의 오른쪽이 상대에게는 왼쪽이 되는 것이다.

소와 사자가 있다. 둘이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얼마 뒤 결혼했고 둘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소는 최선을 다해 맛있는 풀을 사자에게 대접했다. 사자는 풀이 싫었지만 소를 사랑해 참고 먹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 맛있는 고기를 소에게 대접했다. 소 역시 괴로웠지만 사자를 사랑하니까 참고 고기를 먹었다.

참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둘의 인내는 이내 바닥 났고 폭발하고 말았다. 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널 사랑했기에 너에게 신선한 고기를 대접했다. 그런데 왜 안 먹는 거냐.” 소도 지지 않았다. “나 역시 너를 사랑해 풀을 줬는데 넌 왜 맛있게 먹지 않는 것이냐. 그리고 대체 왜 나한테 자꾸 고기를 주는 것이냐.” 싸움 끝에 둘은 헤어졌다. 이별하면서 서로에게 남긴 말이 가관이다. “그래도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어.”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 아는 것이다.”

하나님도 우리 인간을 위해 제일 먼저 자기중심성을 깨뜨리셨다.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이었다. 관계성의 시작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나이기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를 얻기 위해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이창우 박사(선한목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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