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흘림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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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흘림이 있는 사람

입력 2020-09-2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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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 안 청소를 잘 안 하니까.”

일본의 전통 하이쿠 시인 고바야시 이사의 시입니다. 게으른 시인 덕에 거미가 살았습니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넉넉한 틈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 틈으로 나도 들어가고 그도 들어와 100개의 감춰진 뜻을 찾아내고 다정한 낙서도 하고 더 많은 이야기와 여운, 느낌표를 채울 수 있는 사람. 적당히 비어 있어 말을 걸 수 있고 터를 잡을 수 있는 사람. 빽빽하지 않고 긴 빈칸이 있는 한 줄의 편지처럼 울림을 주는 사람. 미완성의 웃음을 가진 사람. 추수할 때도 나그네를 위해 모퉁이는 남겨 두고, 알곡 꾸러미도 대충 흘리는 사람. 그런 사람의 여백으로 들어가 쉬고 싶습니다.

불쌍한 여인 룻은 누군가 흘려준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나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이 됩니다. 흘림이 있고 여백이 있고 공감이 있고 긍휼함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룻 2:3)

한재욱 강남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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