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골목 식당

국민일보

[창] 골목 식당

김철오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입력 2020-09-26 04:07

김 사장은 서울 지하철 사당역 번화가 골목 끝자락의 작은 식당을 2년 만에 배달 맛집으로 키웠다. 이 골목에서 ‘자영업자의 신화’로 여겨진다. 김 사장을 처음 만난 건 혹한으로 한강이 얼었던 2018년 2월의 어느 밤이었다. 늦은 퇴근길에 추위를 피해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이 김 사장의 식당이었다. 김 사장은 우람한 몸을 웅크리고 도마에 올린 연어를 섬세하게 손질했다. 지느러미를 한칼에 떼어낸 김 사장의 거친 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연어로 주문해도 될까요. 소(小)자로요.” 차림판도 보지 않고 도마에 놓인 연어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 사장은 연어를 새벽에 손질해 한나절을 숙성하고 그날 저녁부터 손님의 식탁에 올렸다. “날것을 좋아하시는군요. 방금 들여온 놈입니다.” 다음 장사 재료였지만, 김 사장은 선심을 썼다. 어쩌면 그때 골목 전체의 인심이 후했는지도 모르겠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일이 다가오고 남북 정상회담이 논의되던 때다. 내일조차 확신할 수 없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골목은 생기와 희망으로 넘쳐났다.

평소에 생선을 즐기지도 않으면서 그날따라 눈앞에서 손질된 연어를 먹겠다고 호기를 부린 심야의 식사는 결국 젓가락질 몇 번으로 끝났다. 포장을 부탁했다. “감사합니다. 입맛에 맞지 않았나요.” 김 사장은 남은 연어에 온갖 반찬을 덤으로 얹은 봉투를 손에 쥐여 줬다.

그 호의의 답례로 발걸음을 계속했다. 김 사장과 말이 통했다. 다섯 번쯤 찾아갔을 때 서로 같은 나이를 확인했고, 다음 방문에서 말벗이 됐다. 그 시기에 김 사장의 하루 매출은 30만원 안팎을 오갔다. 3만원어치도 팔지 못하고 장사를 접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김 사장은 망친 장사를 불평하지 않았다.

김 사장을 움츠리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김 사장은 2000년 입대한 육군 특전사 공수여단에서 4년6개월을 만기 복무하고 전역했다. 처음으로 낙하산 훈련을 받으면서 군홧발 밑으로 펼쳐진 검은 바다를 잊지 못했다. “동해 바닷물은 파랗잖아. 밤도 아닌 낮에 상공에서 본 바다가 검은 거야. 교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원래 그렇대.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어. 지금도 꿈에 나와.”

김 사장의 거친 손은 특전사 복무 시절에 생사를 넘나들던 훈련의 증거였다. 바다를 보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 특전사가 사회로 나와 바다의 은혜로 먹고살다니,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의 연속이다.

김 사장은 2010년대 들어 도마와 칼에 인생을 맡겼다. 생선을 손질하고 숙성하는 기술을 체득해 성실하게 기본기를 쌓고, 운이 좋게 훌륭한 스승을 만나 재료를 고르는 안목을 얻었다. 그게 김 사장의 ‘콘텐츠’였다.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장인의 꿈을 이룰지도 모르겠다고 김 사장은 생각했다.

이런 김 사장에게 변화가 닥쳤다. 언젠가부터 가게 문밖에서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오래전부터 구축된 한국식 배달 유통망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나 ‘플랫폼 경제’로 팽창하던 2018년 가을이었다. 김 사장은 숙성법과 칼질의 기술을 들고 배달 앱에 뛰어들었다. ‘숙성 연어’에서 ‘숙성 삼겹살’로, 재료만 바꿨다. 숙성된 삼겹살은 버터 맛을 냈다. 이게 골목 입맛에 적중했고 입소문을 탔다. 김 사장은 이제 배달 앱에 브랜드 4개를 등록해 운영할 만큼 사업을 키웠다. 하루 매출은 2년 전보다 8배 이상으로 늘었다.

골목에서 소비되는 입맛을 찾을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고, 가혹한 평가를 정성껏 응대해 품질을 개선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 사장의 성공은 새로운 플랫폼에 뛰어든 용기와 아이디어를 접목한 콘텐츠 없이는 불가능했다. 김 사장의 콘텐츠란 결국 숙성법과 칼질의 기본기다.

얼기설기 얽힌 서울 골목 한곳에서 반짝 돋아난 작은 식당의 성공담은 콘텐츠를 가진 이상 승산이 있다고 말해 준다. 그 승산이 얼마나 될까. 세상일과 닮았다는 야구에서 리그 선두의 승률은 대체로 6할대다. 야구라는 플랫폼 안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팀이라면 제아무리 강자를 만나도 열 번을 싸워 서너 번을 이길 확률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다. 감염병 재난에 맞선 지금의 생존기는 언젠가 성공담으로 다시 쓰일 것이다. 어떤 서사든 자신의 콘텐츠로 써야 한다. 자영업자만의 일이 아니다.

김철오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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