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이 위기가 끝났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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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이 위기가 끝났을 때는

요한1서 4장 18절

입력 2020-09-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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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라고들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를 보면 그 미움의 근원은 두려움인 것 같습니다. 창세기 3장 10절을 봐도 그렇습니다. 아담이 금지된 열매를 먹은 뒤 하나님이 그를 찾으셨을 때, 그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두려움이야말로 가까운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주원인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불에 손가락을 데면 불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조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위험한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있어야 그것을 너무 가까이하지 않게 되며, 따라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이 되듯, 무엇이든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려움’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염병의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위험이 크게 느껴지는 만큼 공포감도 큽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 공포에 짓눌려 다음과 같이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첫째, 터널 시야(tunnel vision)에 사로잡힙니다. 터널에 들어가면 출구만 바라보고 빠져나갈 생각만 하게 되듯, 모든 생각이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벗어나는 것에만 몰두해 있고, 그 결과 관심을 가져야 할 많은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병균은 코로나바이러스 외에도 많습니다. 이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무서운 병균도 많습니다. 그러니 코로나바이러스를 막는다고 질병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증오감이 커집니다. 특히 돌봄을 받아야 할 확진자를 돌 맞을 범죄자로 취급합니다. 왜 조심하지 않고 병에 걸려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병에 걸렸다는 결과만 보고 그 사람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그리고 확진 판정을 받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사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증상이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똑같이 감염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무증상 감염자로서 병균을 퍼뜨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문제없이 넘어가지만, 어떤 사람은 세상 말로 ‘재수 없게’ 확진 판정을 받고서 고통스러운 격리치료 기간을 보냅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식당 주인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 주인은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식당은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포는 더 커져만 갑니다. 전염병이 몸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협에 눌린 사람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의 인격과 인생을 망가뜨리기도 하니 말입니다.

과거에 교회학교 교사를 할 때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로 시작되는 곡을 자주 불렀는데, 요즈음에는 그 곡의 2절이 자주 생각납니다. “이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뭐라 말할까.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전염병이 끝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살아남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혼자 기뻐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공포에 눌려 이웃을 원망하고 미워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숨길 방법을 찾고 있을까요.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가 끝난 다음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박정관 목사(장로회신학대 교수)

◇박정관 목사는 장로회신학대 교수로 성서해석학과 문화해석학을 가르칩니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와 대학원, 장신대 신학대학원,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과 하버드대를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신학과 해석학을 전공했습니다. 문화연구원 소금향 원장으로도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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