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코로나19와 교단 총회

국민일보

[샛강에서] 코로나19와 교단 총회

정진영 종교국장

입력 2020-09-24 04:02

처서, 백로에 이어 추분이 지나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일주일 후면 추석이다. 곡식이 익고 과실은 살찐다는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추석은 명절 중의 명절로 친다. 육당 최남선은 저서 ‘조선의 상식’에서 ‘8월 가위는 전국 상하를 통틀어 가장 큰 명일’이라고 했다. 객지에서 맞는 추석은 아련하다. 코로나19를 맞닥뜨린 올해는 서글픔이 더하다. 방역 당국의 이동제한 권고를 무시하고 귀향을 결행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향 부모를 찾지 않자니 마음은 더 애닯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추석은 그냥 그리움이다.

추석이 다가올 때쯤인 매년 9월 한국 교회엔 큰 행사가 열린다. 주요 장로교단의 현안을 다루는 정기총회가 개최된다. 1년에 한 번 모이는 총회에서는 총회장과 교단 살림을 꾸려갈 임원이 선출되고 한 해의 교단 정책이 짜인다. 지난 21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과 통합을 시작으로 22일엔 예장백석과 고신, 합신이 총회를 마련했다. 코로나19의 엄혹함을 경험하는 올해 총회는 외양이 많이 바뀌었다. 사나흘씩 숙식을 함께하며 치르던 예년의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하루 이틀의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전국 각지에서 몰린 차량과 총대들로 북적였던 총회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총회 전 총대들에게 구호를 외치거나 플래카드, 입장문 등을 돌리며 의견을 피력하던 부산함은 사라졌다.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현상이었지만 비대면으로 인해 회의가 내실있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처음으로 문자투표를 통해 임원을 뽑는 예장합동의 선거 과정에서는 문자메시지를 전송받지 못한 일부 총대들이 투표를 하지 못했다. 회의 주최 측 입장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려는 인사들에게 발언권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번 총회에서 교회 밖의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이단 지정 여부였다. 예장합동은 전 목사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각각 ‘이단 옹호자’와 ‘이단 옹호기관’으로 판단해 총회 임원회에서 다루기로 했고, 예장통합은 1년간 이단성 여부를 더 연구하기로 했다. 전 목사의 이단성 여부에 가장 엄격한 잣대를 대는 예장고신은 다음 달 6일 정책총회를 통해 최종 결정키로 했다. 고신 이단대책위원회는 지난해 총회 때 올라온 관련 질의에 대해 1년간 연구한 결과 “한기총과 전 목사를 각각 이단 옹호단체와 이단 옹호자로 규정함이 가한 줄 안다”고 결론 내렸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전 목사에 대한 한국 교회의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교계 여러 단체가 그의 신학적 견해와 사상이 정통 기독교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을 했다. 이런 점에서 볼때 한국 개신교 주류 교단이 이번 총회에서 단호하게 전 목사와 신앙적 선긋기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몇 시간 이내 수십 건의 헌의안을 처리해야 하는 온라인 총회 현실에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이단 판정 여부를 결론짓는 것은 성급하다는 교계 일부의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학적, 신앙적으로 보다 정밀한 검증을 거쳐야 이단 판정 시비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는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교단 총회는 지난 한 해의 결실을 점검하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특히 새 총회장들은 교단의 리더이자 한국 교회의 핵심 인물인 만큼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들이 어떤 역량을 펼치느냐에 따라 한국 교회의 명암이 교차된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거론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한국 교회의 상황은 최악이다. 신앙의 환경은 악화일로지만 믿음의 뿌리는 흔들릴 수 없다. 교단 총회를 계기로 한국 교회 신앙고백의 잡도리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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