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총명함 인상 깊어… 그는 진정한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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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심·총명함 인상 깊어… 그는 진정한 영웅”

유관순 순국 100주기… 영적 스승을 만날 수 있는 책

입력 2020-09-2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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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트 월터 선교사는 사역 도중 만난 굶주린 소녀와 시각장애인 소년을 입양해 키웠다. 한복 차림으로 한국인 아기를 안고 있는 월터 선교사. 신앙과지성사 제공

“몇 달 후 어린 16세 학생이었던 유관순이 감옥에서 죽었다. 우리는 그녀의 시신을 학교로 운구해왔고 학생들은 장례를 위해 무명으로 된 수의를 준비했다. 그런데 밤 동안 학생들은 유관순 학생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결정하고 비단 옷감을 찾아내 수의를 만들어 다시 입혔다.… 나는 장사를 지내주기 위해 유관순에게 수의를 입혔다.”

‘유관순의 마지막 스승’ 지네트 월터(1885~1977) 선교사가 기록한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모습이다. 월터 선교사는 당시 유관순의 모교 이화학당의 학당장 대리 자격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직접 시신을 인수해 정동교회 장례예배, 이태원 공동묘지 안장까지 모든 장례 절차를 직접 주관했다.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에 실린 유관순 열사의 모습. 신앙과지성사 제공

오는 28일 유관순 열사의 순국 100주기를 맞아 유 열사의 마지막을 지킨 월터 선교사의 평전이 최근 나왔다. 언론인 출신인 임연철 미국 드루대 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이 쓴 ‘지네트 월터 이야기’(밀알북스)다.

월터 선교사는 1911년 내한해 이화학당에서 영어·체육교사이자 학당장을 지냈고 평양 정의여학교 교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26년 아버지 병환으로 미국으로 귀국하기까지 15년간 조선 땅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일기에 기록했다. 훗날 ‘진 아주머니’(Aunt Jean)란 제목의 자서전 초고가 된 일기에는 그가 목격한 3·1운동 현장과 유관순의 장례 과정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지네트 월터 이야기

월터 선교사는 “1910년 일본의 강제 병합 이래 모든 한국인의 한 가지 염원은 자유롭게 되는 것이었다”며 “역사 수업 중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내용이 나오면 학생들은 눈물을 흘렸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적었다. 이화학당 학생의 독립 염원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1운동에 동참한 이화학당 교사와 학생 다수가 투옥되자 면회한 일도 기록했다. 갖은 고초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월터 선교사는 3·1운동 의의를 이렇게 평한다. “3·1 독립 만세시위 시도는 실패했지만, 한국인은 더는 고분고분한 국민이 아니다. 이들은 애국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새로운 동기에 힘입어 일상적인 생활에서 의무를 다했다.”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존중한 월터 선교사의 태도는 유관순의 장례식 준비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일제는 대체로 형무소에서 죽은 이들을 화장한 뒤 인계했는데, 그는 제자의 시신을 그대로 인도해 줄 것을 당국에 강력히 요구해 이를 관철했다.

책에는 3·1운동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신문과정에서 고문당한 이화학당 학생들의 증언록 10편 전문과 더불어 1918년 창궐한 스페인 독감 예방 활동, 학생 운동복을 개선한 일화, 선교사 은퇴 이후의 삶 등이 담겼다. 특히 월터 선교사 재임 당시 영어로 작성된 증언록은 미국 감리교 선교본부에 보내져 일제의 야만성을 외부에 알리는 근거가 됐다. 해당 자료는 저자 임 연구원이 지난해 4월 미국 드루대 감리교문서보관소에서 찾아냈다.

이야기 사애리시

유관순의 첫 스승인 사애리시(앨리스 샤프·1871~1972) 선교사의 일대기를 다룬 책 ‘이야기 사애리시’(신앙과지성사)도 함께 읽으면 좋다. 사 선교사는 유관순의 두터운 신앙심과 총명함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자신이 세운 공주 영명여학교에 진학시킨 뒤 서울의 이화학당으로 편입시켰다. 한국에서 함께 선교사역을 하다 발진티푸스로 남편을 잃고도 이 땅에 남은 그는 39년간 여학교 9곳, 유치원 7곳, 교회 100곳을 세웠다. 지난 5월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에 추서됐으며, 책은 2020년 세종도서에 선정됐다.

두 책을 모두 지은 임 연구원은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선교사들의 후손과 만나 자서전과 앨범 사진 등 한국 관련 유품을 수집해 집필했다. 그는 지난 17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사 선교사를 취재하며 월터 선교사의 존재를 알게 됐다. 업적에 비해 대중에겐 안 알려져 있어 꼭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도 잊힌 선교사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