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자연과 함께, 멍 때리기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자연과 함께, 멍 때리기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0-09-25 04:05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진료시간에 “쉴 때는 주로 무얼 하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유치원생부터 초·중·고 학생까지, 그리고 그들의 부모마저 같은 답을 했다. “스마트폰 보죠 뭐.” 나 역시 업무뿐 아니라 자투리 시간에도 언제 급한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핑계로 좀처럼 폰을 내려놓지 못하지만, 아무리 ‘코로나 시대’라도 세대를 막론하고 천편일률로 단 하나의 방법만을 찾는다는 것은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스마트’하게 쓰지 않는다면 집중력까지 망치기 쉬운 썩은 동아줄 같은 그것이 모두의 유일한 도피처라니 말이다.

수년 전 ‘멍 때려라’라는 책이 화제가 됐다. 그만큼 바쁜 현대인에게 뇌를 쉬게 하는 시간이 얼마나 절실한지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의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인터넷과 스마트폰 문화 탓에 아직 말도 못 뗀 영유아까지도 멍 때리는 놀이 시간을 도둑맞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루 종일 같은 답변만 듣다보니 이런 노파심마저 들었다.

주차장같이 꽉 막힌 지루한 고속도로 출퇴근길. 아무리 바빠도 길 위에 갇혀 있는 셈이니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거나 창밖을 보며 쉴 수밖에 없다는 장점(?)이 있다. 작년만 해도 미세먼지 가득한 퀴퀴한 날씨 탓에 창 밖이나 안이나 암울하기 그지없었건만, 요즘은 코로나 시대의 장점일는지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가도 창틀이 액자로 보일 만큼 선명하게 빛나는 하늘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렇게 멍하니 낯선 곳에 떨어진 여행자가 된 기분으로 창밖을 보다 보면, 어느새 지친 나를 저 하늘이 가만가만 위로해 주려는 건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든다.

빈부나 지위와 무관하게 우리가 보는 하늘은 똑같은 곳에 있다. 잠시 뇌의 인위적인 과열을 식힐 겸 시간의 흐름이 선물해주는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 우리 뇌에 꼭 필요한 ‘멍 때리기’와 함께.

배승민 의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